작성자 : Latin America | 작성일 : 2017-03-07 16:13:42 | 조회수 : 1,829 |
국가 : 파라과이 | ||
안태환(前 중남미지역원 HK연구교수)
파라과이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아우구스토 로아 바스토스는 파라과이를 대표하는 작가이다. 그는 1917년 브라질인 아버지와 과라니 원주민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2005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파라과이의 민중 즉 과라니어를 쓰는 가난한 원주민들을 사랑한 작가이다.
그는 어릴 때 그들 원주민아이들과 같이 놀았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는 교육수준이 높고 경제적 여유가 있는 중산층 출신이다. 그런데 그는 정식의 학교교육을 받지 않고 친척인 가톨릭 주교로부터 근대성의 유럽의 인문학 고전을 사사 받았다. 마치 라틴아메리카 독립의 영웅인 시몬 볼리바르의 교육과 비슷하다. 입시위주와 점수 위주의 우리 교육의 현실과는 너무 멀어 이상한 느낌도 준다. 그가 15세에 터진 파라과이와 볼리비아의 전쟁 즉 차꼬전쟁에 흥미를 느껴 간호병으로 참전한다. 그 당시 겪은 공포와 폭력은 그를 한 평생 평화를 위해 싸우도록 만든다. 그리고 이때의 체험을 바탕으로 소설 [사람의 아들](1960)을 만든다.
이 소설은 대부분의 라틴아메리카 현대소설과 같이 매우 흥미 있고 박진감 넘치는 리얼리즘 소설이다. 그러나 평범한 증언적인 3인칭 소설이 아니라 작가와 편집자를 의도적으로 나누어 놓고 화자와 소설속의 현실을 바라보는 사람을 또한 다양하게 배치하여 소설속의 리얼리티가 애매하고 복합적인 성격을 가지게 됨을 독자에게 보여준다. 이 같은 이중성 또는 애매성은 스페인어와 과라니어라는 이중 언어와 문화 구조를 가지고 있는 파라과이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특히 이 소설에서 감동적인 것은 원주민 주인공이 고통 속에 탈주하며 멈추어있는 화차 칸에 올라타 죽어가면서도 화차 칸 스스로가 움직인다든지 하는 환상적인 요소와 결합시켜 역사를 이끌고 가는 좌절을 모르는 민중의 힘을 느끼게 하는 장면이다. 또한 과라니어를 소설 속에 많이 사용하여 생동감이 드러난다. 그는 연극 극본도 쓰고 신문사의 기자로서 유럽에 파견되기도 한다. 이런 경험은 가르시아 마르께스 처럼 대부분의 라틴아메리카 현대작가들의 체험과 동일하다.
40년대에 파라과이의 시운동에 참여하기도 하고 내전 중에 그는 정당 활동은 하지 않았지만 항상 억눌림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는 민중 편에 섰다. 그는 쿠데타의 위협 앞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망명을 해 거기서 대부분의 작품을 쓴다. 1976년에 남미의 코노 수르 지방(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파라과이등)이 가혹한 군부독재에 들어가면서 그는 프랑스의 툴루스 대학으로 초청받는다. 1989년에 악명 높은 쉬트로센너 독재자가 물러나면서 귀국한다. 그리고 이해에 스페인어 권에서 권위 있는 문학상인 세르반테스 상을 받는다. 그의 이런 삶은 항상 독재 권력과 지식 또는 글쓰기의 관계와 소설을 어떻게 써야 하나 또는 어떻게 읽어야 하나와 같은 메타문학적인 테마에 몰두하게 만든다. 이런 고민이 미학적으로 높은 경지에 이른 작품이 그의 대표작인 [나 최고](1974)이다.
이 소설은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파라과이의 초대 대통령의 실존적 역사적 기록인지 알 수 없는 독특한 형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과라니 문화가 가지는 집단창작의 구어문화의 힘과 개인적 글쓰기의 형식이 상징하는 독재를 대비시켜 놓고 있다. 그리고 구어문화의 순수함과 연대성이 독재를 막아내는 문화 사회적 저력이 됨을 소설 형식 자체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이 소설이 중요한 것은 역사와 소설의 관계를 새롭게 인식시키고 있는 점이다. 역사는 보통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것으로 소설은 픽션 즉 허구로 인식한다.
그러나 이 소설은 역사야말로 허구인 것을 드러내고 소설 그 중에서도 개인적 작가의 전통적인 방식의 글쓰기가 아니라 민중 스스로의 구어문화, 증언문화가 집단적으로 연대하며 창작한 글쓰기야말로 진정한 역사이고 새로운 소설 쓰기로 바라보아야 함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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