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Latin America | 작성일 : 2017-03-07 16:08:13 | 조회수 : 1,527 | ||
국가 : 파라과이 | ||||
구경모(前 중남미지역원 HK연구교수)
에스뜨로에스넬이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1947년 내전(Guerra Civil)과 관련이 있다. 1947년 내전은 자유당(Partido Liberal)출신의 대통령인 모리니고(Morinigo)가 미국을 등에 업은 홍색당(Partido Colorado)과 결탁하면서 발생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자유당은 사회주의 계열인 2월 혁명당(Partido Revolucionario Febrerista)과 파라과조 공산당(Partido Comunista Paraguayo)과 연합하여 모리니고와 대립하였다. 파라과이 정부군은 자유당 연합지지 세력과 홍색당지지 세력으로 양분되었고, 에스뜨로에스넬은 홍색당 측으로 내전에 참여하여 큰 공을 세웠다. 결국 홍색당이 내전에서 승리하면서 에스뜨로에스넬은 1948년에 36세의 나이로 남아메리카 최연소 장군이 되었다. 그는 1951년 홍색당에 가입면서 정치를 시작하였고, 같은 해에 군(軍)의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1954년에는 그의 지지 세력과 함께 같은 당의 페데리꼬 차베스(Federico Chavez)대통령을 쿠데타로 몰아낸 후 그 해에 취임하였다. 그는 집권기간 동안 8번이나 단독후보로 출마하여 재선에 성공하였다. 여느 독재자들과 마찬가지로 에스뜨로에스넬은 정권 유지를 위하여 반대세력의 정치인과 무고한 시민들을 고문하거나 납치, 살인하였다. 특히 그는 냉전이라는 역사적 배경에서 발생한 두 개의 정치적 사건을 통해 많은 수의 민간인을 학살하였다. 그 첫 번째는 1960년에 일어난 5월 14일 운동(movimiento 14 de Mayo)이다. 5월 14일 운동은 1947년 내전으로 인해 아르헨티나로 망명한 반(反)홍색당 세력들이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의 사회주의 세력과 함께 아르헨티나 국경에서 혁명군을 조직하여 파라과이로 진격한 사건을 말한다. 혁명군은 정권교체가 목적이었지만 그들의 작전이 사전에 노출되면서 실패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에스뜨로에스넬 정권은 반(反)홍색당 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실시하였고 많은 수의 정치인과 민간인이 투옥되거나 잔인하게 처형되었다. 두 번째는 1970년과 1980년대에 미국이 라틴아메리카의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세력을 축출하기 위해 벌인 콘도르 작전(Operación Condor)이다. 이 작전의 실체는 1992년에 교육운동가인 마르띤 알마다(Martín Almada)가 람바레(Lambaré)시의 경찰 수사부 사무실에서 관련 문서(Archivo del Terror)를 무더기로 발견함으로써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이 문서에는 투옥된 정치인들과 첩보원 활동 정보, 민간인 통제를 위한 군부와 경찰의 교신 내용이 고스란히 포함되어있다. 이 시기에 실종되거나 죽은 사람들은 약 3,000명에서 4,000명에 이른다고 보고되고 있다. 1980년대 후반 인근 국가인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에서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높아가면서 에스뜨로에스넬은 그가 정권을 잡았을 때와 유사한 모습으로 권력을 잃게 된다. 같은 당의 안드레스 로드리게스(Andrés Rodríguez)는 에스뜨로에스넬을 축출하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켜 성공하게 된다. 정치권에서는 이 쿠데타를 아주 충격적으로 받아들였다. 왜냐하면 로드리게스는 에스뜨로에스넬의 최측근이었으며, 그 세력에는 에스뜨로에스넬의 처가 세력도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로드리게스의 쿠데타를 계기로 에스뜨로에스넬은 가족들과 함께 브라질로 망명을 떠났고, 기나긴 독재 정권은 막을 내리게 된다. 그러나 파라과이 정치권에서는 여전히 에스뜨로에스넬 가문의 영향력이 남아있다. 그의 손자인 알프레도 구스따보 에스뜨로에스넬(Alfredo Gustavo Stroessner)은 2008년에 홍색당 소속으로 상원의원에 당선되어 활동하고 있다. 파라과이에서는 독재 정권을 겪은 다른 라틴아메리카의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국가적 차원에서 과거사 청산 작업을 실시하고 있다. 2003년에 진실과 정의 위원회(Comisión de Verdad y Justicia)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과거사 청산 사업은 2009년에 진실, 정의와 회복국(Dirección General de Verdad, Justicia y Reparación)으로 개편되어 진행 중에 있다. 특히 페르난도 루고(Fernado Lugo)를 통해 61년 만에 정권교체가 이루지면서 과거사 청산 작업은 증언수집 차원을 넘어 유해발굴과 사회교육에 이르기까지 다양화, 전문화되고 있다. 이러한 과거사 청산을 비롯한 “공식화된 역사”의 관점에서 에스뜨로에스넬 정권은 민주화를 거스른 독재 정부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독재 정권의 탄압을 몸소 겪지 않은 시민들은 과연 에스뜨로에스넬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이 물음과 관련하여 문득 올해 초 파라과이에서 택시기사가 내 뱉은 넋두리가 기억에 남는다. “루고가 들어서고 우리 집 근처에 도둑들이 너무 많이 늘어나서 불안해. 물가는 너무 올랐고 경제가 나빠서 할 일 없는 놈들이 너무 많아. 이 놈들은 낮에는 더우니깐 집에 틀어 박혀서 떼레레(tereré) 마시고 자다가 저녁에 선선해지면 나와서 맥주마시고 도둑질하고. 에스뜨로스넬때는 도둑도 없고 살기 좋았는데...”
|
이전글 | 꿈꾸는 혁명가 마리아떼기 |
---|---|
다음글 | 한국전 참전은 우리의 역사적 사명: 라우레아노 고메스 콜롬비아 대통령 (1889~196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