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Latin America | 작성일 : 2017-03-07 15:56:35 | 조회수 : 1,701 | ||||||
국가 : 페루 | ||||||||
황수현(경희대학교)
보조로 취직하여 교정과 잡일을 거들며독서를 통해 세상에 대한 눈을 뜨게 된다.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열리고 세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후안 끄로니께르라는 필명으로 신문에 정치 투쟁에 관한 글을 쓰게 되자 당시의 레기아 정부는 눈에 가시 같던 기자 마리아떼기에게 유럽 유학의 당근을 제시한다. 유럽 유학은 그의 인생에 있어 일대 전환기가 되어 마리아떼기는 파리에서 앙리 바르뷔스를 만나고 이탈리아에서 다눈치오, 미래파 운동을 이끌었던 마리네티와 교류하며 당대의 선진적인 문물과 조우하게 된다. 특히 이탈리아 공산당의 창설 멤버 중 하나인 안토니오 그람시와의 만남은 그에게 사회주의 사상을 확신하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마리아떼기는 4년 간의 유럽체류를 마치고 1923년 귀국하여 페루에 사회주의 운동을 전개한다. 1928년 페루 사회당(P.S.P)을 창당하고 『페루 현실분석을 위한 일곱 편의 글』을 발표하여 페루의 경제적 현실과, 인디오, 토지, 교육, 중앙 집권과 지방 분권에 관한 문제를 논하고 당대 문학에 대해 분석한 글을 내어 놓는다. 마리아떼기는 스스로 마르크스주의자라고 천명했으나 이론의 교조적 적용이 아니라 페루의 역사적 상황을 이해한 후 현실에 맞서 혁명노선을 채택하였다. 그는 사회주의가 라틴아메리카 사회의 발전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해야한다는 당위론에 입각하여 사회주의를 라틴아메리카 실정에 맞게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그가 주목한 것은 페루의 특수상황 즉, 산업화가 주변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디며 노동자의 정치의식이 약한 현실을 인식하고 농민, 원주민, 도시 빈민을 포함하는 광범한 지지기반을 바탕으로 사회주의 정당을 건설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의 사회주의 사상이 가지는 특별함이 있다면, 그것은 잉카제국으로 비롯된 혈통적 연대 즉 인디오를 통한 자기정체성 모색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마리아떼기가 1920-30년대의 페루라는 구체적인 상황에서 인디오들이 지닌 역할을 인식하고 그들을 역사 발전의 주체적인 계급으로 상정하고 있었다는 것은 당대로서는 진일보한 사고로 평가된다. 구체적으로 그는 인디오 문제를 국가 경제의 중요한 문제로 인식하고 인디오의 박탈된 지위를 개선하기위해 토지소유제도 개혁을 주장했다. 그는 인디오에게 토지를 분배함으로써 인디오가 스스로 경제적 주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문학에서도 리마 (해안)중심의 문학풍토를 비판하며 주변부(산악)지역의 문학을 소개하려 애썼다. 마리아떼기는 " 나의 이상은 식민지 페루도 아니요, 잉카 시대의 페루도 아닌 통합된 페루이다"라고 주장하며 인디오를 포함한 공존의 사회를 건설하고자했다.
마르띤 아단과 같은 소년 작가들이 이 잡지를 통해 소개된다. 마리아떼기 자신이 사회주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문학적 실험이 이루어진 공간은 신진작가에는 그들의 문학적 재능을 부화할 수 있는 인큐베이터였고 기존 작가는 문학적 실험실을 가지고 다양한 시약을 검사해보는 가슴 설레는 창조의 공간이었다. 바다 건너 유럽의 문학 논쟁이 가장 먼저 소개된 곳이기도 하고 마르크스 주의와 노동운동, 인디오 문제 등이 한 편에서 열띤 논쟁으로 점화되고 다른 한편에선 세사르 바예호, 오껜도 데 아마트, 세사르 모로, 사비에르 아브릴의 시가 강물처럼 넘치고 있었다. 아마우따를 이끌던 마리아떼기는 지휘자였다 바람을 부르고 불을 일으키는... 그래서 마리아떼기가 세상을 떠나자 아마우따는 더 이상 발간되지 못한다. 아마우따가 폐간이 되자 페루 전위문학의 빛도 침잠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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