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Latin America 작성일 : 2017-03-07 15:55:12 조회수 : 2,437
국가 : 칠레


조영실(前 중남미지역원 HK연구교수)

 

“기타는 총, 노래는 총알”은 1970년대에 라틴아메리카에서 풍미한 ‘새노래 운동’의 모토이다. 노래는 민중의 의식을 고양시키는 역할을 하므로 노래는 곧 무기라는 뜻이다. 칠레의 대표적인 새노래 운동 뮤지션 빅토르 하라의 기타와 노래가 특히 그랬다. 그래서 피노체트의 쿠데타가 일어나던 그날 체포되어 암살당한 하라는 기타를 치던 손목이 잘려 있었다는 고통스런 사건이 전해진다. 사실 1960년대와 70년대의 라틴아메리카는 사회적 문화운동이 활발하던 시기였다. 1959년 쿠바혁명이 성공한 이후 라틴아메리카 대륙에서는 혁명의 실현가능성에 고무되어 60년대를 혁명을 시도하는 데 열중했다. 결과적으로 그 시도들은 대부분 불발로 끝나고 70년대에 들어서면서 군부의 압제가 시작되었지만 이 시기가 낳은 라틴아메리카의 문화적 자산은 풍요롭고 값진 산물이었다. 이 문화적 산물의 대표격이 바로 앞에서 언급한 새노래 운동, 그리고 ‘신영화’라고 지칭되는 운동이다.
 

‘새롭다’는 형용사가 의미하는 것, 아마도 그것이 이 두 문화운동의 에센스라고 할 수 있겠다. 즉, 음악과 노래에 있어서, 그리고 영화제작에 있어서 기존의 흐름, 기성의 경향을 거부하고 새로운 시대에 부합하는 흐름을 제시하겠다는 의미이다. 이 때의 새로운 시대란 미국으로 대표되는 제국주의의 압박과 미국과 호형호제하던 권위주의 정권의 억압의 시대였다. 라틴아메리카의 신영화 운동도 새노래 운동 못지않은 근사한 수사를 달고 다닌다. “카메라는 이미지를 실어나르는 탄창, 영사기는 초당 24발의 프레임을 쏘아 보내는 기관창”이라는. 투쟁성과 참여성을 강조하는 이 매력적인 비유의 주창자, 그가 바로 아르헨티나의 영화감독 페르난도 E. 솔라나스(Fernando E. Solanas)이다.

‘피노’(Pino)라는 애칭으로 더 잘 알려진 솔라나스는 1936년 부에노스아이레스 태생으로 법학과 연극, 작곡 등을 전공했다. 첫 단편영화 <계속 전진하기>(1962) 이후 몇 년간 광고업계에서 일하다가 1966년 옥타비오 헤티노(Octavio Getino)를 만나게 된다. 솔라나스보다 한 살이 더 많은 헤티노는 스페인 레온 지방에서 태어나 아르헨티나로 이주한 영화인이었다. 헤티노와의 만남은 솔라나스의 이후 궤적의 결정적인 전기가 된다.


두 사람은 “해방영화집단”(Grupo Cine de Liberacion)을 결성하고 “제3영화를 위하여”라는 논쟁적인 글을 통해 자신들의 영화 이론이자 라틴아메리카가 지향해야 할 영화의 방향성을 구체적으로 표명했다. 그리고 이 제3영화의 예시 격에 해당하는 영상 결과물이 3부작에 걸친 대작 <불타는 시간의 연대기>(1968)였다. 더러 제3영화를 ‘제3세계 영화’로 혼동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솔라나스와 헤티노가 말하는'tercero'(third)는 오늘날 폐기되거나 거부당하고 있는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의 저개발 국가들을 지칭하는 용어 ‘제3세계’를 가리키는게 아니다. 어쩌면 ‘대항적인’, 나아가 ‘대안적인’이라는 의미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들 해방영화그룹은 먼저 상업성과 오락성을 추구하는 헐리우드식 영화를 제1영화라고 칭한다. 그리고 이러한 제1영화의 소비지향성을 문제제기하고 작가주의적인 미학성을 추구하는 유럽 영화를 제2영화라고 불렀다. 제2영화는 헐리우드 영화에 대한 비판을 바탕에 깔고 현실을 그려내고자 하지만 미적 작가주의에 머물고 마는 한계가 있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제기되는 것이 제3영화인 것이다. 제3영화는 이 두 영화의 경향을 탈피하여 정치적·사회적인 주제를 구조적 모순의 통찰을 통해 짚어내고 역사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추구하는 혁명적 영화를 말한다.
 

제3영화는 일반적으로 기록영화의 형식을 띠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신문기사와 뉴스릴, 시위 장면, 정치인들의 초상이나 연설 장면의 편집 등으로 구성된다. 솔라나스와 헤티노가 공동으로 제작한 <불타는 시간의 연대기>는 제3영화의 대표작이자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총 상영시간이 4시간을 넘는 이 작품은 ‘신식민주의와 폭력, 해방에 관한 기록과 증언’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데, 이 부제를 통해서 영화의 의도와 주제의식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한 줄기의 내러티브를 가진 영화가 아니라 몇 개의 챕터로 나뉜 기록문에 해당한다. 원래 260분짜리 3부작으로 만들어졌는데, 1부는 ‘신식민주의의 폭력’, 2부는 ‘자유를 위한 행동’, 3부는 ‘폭력과 자유’이다. 일관된 내러티브가 존재하는 게 아닌 만큼 주인공도 없다. 대신 뉴스릴 필름, 연설과 인터뷰, 내레이션 등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피델 카스트로, 프란츠 피농, 에바 페론 등의 말이 인용되고,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프롤로그와 열 세개의 소제목에 나뉘어 있다 .


영화에서 신식민주의적 폭력성에 대한 솔라나스의 분노는 재빠르게 지나가는 불타는 장면, 신랄한 내레이션, 강렬한 사운드트랙 등을 통해 효과적으로 표현된다. 그렇게 보자면 현대의 일반적인 영화 감수성의 담지자에게 이 영화는 영화라기보다 한 편의 혁명 팸플릿으로 보일 정도이다. 독특한 점은 솔라나스는 영화가 상영되는 중간에 상영을 멈추고 관객들에게 즉흥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토론과 논쟁을 유도하는 방식을 취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카메라와 영사기가 곧 무기라는 해방영화그룹의 인식을 잘 보여주는 방식이기도 하다.

1960, 70년대의 라틴아메리카 영화는 스스로 제3영화라는 수식어에 동의하든 안하든 반제국주의적·민족주의적 주제의식과 실천성을 짙게 띄고 있었다. 라틴아메리카의 신영화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묶이곤 하는 작품들이 그것이다. 라틴아메리카의 신영화 운동 대표주자에는 아르헨티나의 솔라나스와 헤티노 외에 칠레의 미겔 리틴(Miguel Litin)과 <칠레전투> 3부작의 파트리시오 구스만(Patricio Guzman), 쿠바의 산티아고 알바레스와 토마스 구티에레스 알레아, 브라질의 시네마 노부 그룹을 꼽는다.
 

솔라나스 감독은 앞의 대작 이후 군부가 집권하면서 프랑스로 망명생활을 했는데 그 개인적 기억과 국가적 역사를 망명과 귀환의 연속물 <탱고, 가르델의 망명>(1985), <남쪽>(1987)으로 풀어냈다. 90년대에 들어서도 <여행>(1992)과 <구름>(1998)을, 그리고 2000년대에 들어서도 <사회적 학살>(2004)과 <이름 없는 이들의 존엄성>(2005)을 통해 1960년대에 펼친 제3영화의 정신을 이어 지속적으로 영화 작업을 하고 있다. 특히 1998년 제3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신작 <구름>이 초청되면서 감독이 직접 내한한 적이 있다. 이 때 제3영화의 현재적 유효성에 대한 질문을 받은 감독은 물적 현실이 바뀌고 과거에 비

해 윤택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적들은 가면을 쓰고 뒤에 숨어 있을 뿐 여전히 빈곤과 불의가 상존해 있다고 지적하며 따라서 여전히 해방영화는 필요하다고 설파한 바 있다.

솔라나스 감독은 부산국제영화제와 특히 인연이 깊어서 <구름> 외에도 2004년 9회 영화제에서는 <사회적 학살>이 상영되기도 했다. 이 영화는 2001년 IMF 경제위기를 겪은 아르헨티나의 현실을 그려내고 있다. 그해 10월에 있었던 격렬한 시민들의 시위장면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도대체 아르헨티나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라는 물음과 함께. 영화는 이 질문에 대해 철저히 구조적으로 대답해보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끝없는 빚더미, 경제 모델, 민영화” 등 토픽에 따라 10개의 챕터로 나눠, 아르헨티나의 경제가 위기에 처하게 된 이유를 꼼꼼히 따져본다. 1970년대부터 2000년대를 오가며 아르헨티나를 망친 요인들을 하나씩 파헤쳐 보자 그 중심에는 장기집권의 시대를 연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과 부정부패의 무리들이 나타난다. 이들의 비열한 행태를 비판만 하는데 그치기보다는 현재와의 인과성을 쉼 없이 추적하고자 노력한다. 휘황찬란한 대통령궁과 암울했던 지난 역사의 자료들을 병치시키며 대조의 미학을 달성하고 있는 <사회적 학살>은 아르헨티나의 현재에 관한 생생한 사회학 보고서이자 최근 들어 보기 드문 전통 다큐멘터리 양식의 교본이라 하겠다.
 

2000년대에 들어와 솔라나스는 영화인으로서의 활동 외에 정치인의 활동도 하고 있다. 1993년에 “프렌테 그란데” 노선을 통해 하원의원에 선출되었으나 이듬해 탈당을 한 적이 있다. 그러다가 지난 2007년에는 ‘정통사회당’의 대통령 후보로 입후보했었고, 부에노스아이레스 시 제2당인 “수르 프로젝트”를 창당하여 올해 6월 총선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 시 하원의원에 당선되었다. “수르 프로젝트”는 진정한 사회정의 실현과 국가주권을 보장하기 위한 조건으로 환경 보호와 자연자원의 공적 소유를 주장하는 노선이다. 영화사에 길이 남을 영화인의 행보가 정계로 연결되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기분이 잠시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어쩌면 그의 제3영화가 지향해 온 길의 자연스러운 귀결일 수도 있다는 관대한 평을 덧붙이고 싶다. 라틴아메리카의 지성은 현대사에서 언제나 사회의 견인차이자 방향타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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