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Latin America 작성일 : 2017-03-07 15:51:21 조회수 : 2,020
국가 : 쿠바

 

송병선 (울산대 스페인중남미 학과 교수)
avionsun@mail.ulsan.ac.kr

쿠바 혁명의 주인공 피델 카스트로를 생각할 때면 많은 사람들이 체 게바라를 연상하지만, 나는 아르헨티나의 신화적 인물 에바 페론을 떠올린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성녀로 추앙받았지만 그렇지 않은 반대파에게는 악녀로 명성이 자자했던 에바 페론처럼, 피델 카스트로 역시 영웅 아니면 잔인한 독재자로 묘사된다. 가령 칠레의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는 비아냥거리는 어조로 이렇게 말한다. “카리스마가 강한 남자. 피델 카스트로는 용감하다. 그는 철권을 휘두르는 정치인이다. 그는 심지어 친한 친구까지 총살형에 처했다. 나 같으면 종신형이나 추방령을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총살시켰다.” 한편 미국의 영화감독인 올리버 스톤은 그의 용기와 도덕성에 찬사를 보낸다. “나는 그의 불굴의 의지를 존경한다. 그는 법을 따르고 훌륭한 법대생이 되어 기성체제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믿는 것을 위해 싸웠고, 생명의 위험까지도 무릅썼다. 나는 그가 그토록 도덕적이라는 것을 예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었다.”

이런 상반된 평가를 받으면서 20세기의 신화가 되어버린 피델 카스트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이것은 『피델 카스트로: 마이 라이프』를 번역 출간한 이후 종종 받는 질문이다. 이 말은 미국이나 서방세계처럼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것인지, 아니면 좌파나 좌파적 성향의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20세기의 영웅이자 신화로 볼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피델 카스트로를 미화하지도 말고 폄하하지도 않은 채, 균형 잡힌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미국적 시각으로 저술된 로버트 E. 쿼크의 카스트로 평전도 비판적으로 봐야 하며, 『피델 카스트로: 마이 라이프』에서 보이는 피델 카스트로의 달변에 빠지지도 말아야 한다.

우선 그는 국제정치계의 마지막 ‘거룩한 괴물’이다. 그는 넬슨 만델라, 호치만, 파트리스 루뭄바, 아밀카르 카브랄, 체 게바라, 카밀로 토레스, 투르시오스 리마, 메디 벤 바르카로 대표되는 20세기 반란자들의 세대에 속한다. 이들은 정의라는 이상을 추구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불평등과 차별로 얼룩지고, 소련과 미국이 시작한 냉전으로 점철된 세상을 바꾸겠다는 야심과 희망을 가지고 정치활동을 한 사람들이다.


수천 명의 지식인들과 진보주의자들, 심지어는 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처럼 그 세대는 공산주의가 화사한 미래를 예고했으며 부정과 인종주의와 가난을 10년 안에 지구상에서 완전히 뿌리 뽑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또한 그는 10명의 미국 대통령(아이젠하워, 케네디, 존슨, 닉슨, 포드, 카터, 레이건, 아버지 부시, 클린턴, 아들 부시)과 싸워야 했다. 또한 1945년 이후 세계의 발전을 이룩한 주요 지도자들(네루, 나세르, 티토, 흐루시초프, 올로프 팔메, 벤 벨라, 부메디엔, 아라파트, 인디라 간디, 살바도르 아옌데, 브레즈네프, 고르바초프, 장쩌민, 요한 바오로 2세, 후안 카를로스 스페인 국왕 등)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리고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몇몇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장 폴 사르트르, 시몬 드 보부아르, 어니스트 헤밍웨이, 그레이엄 그린, 아서 밀러, 파블로 네루다, 조르주 아마도, 오스왈도 과야사민,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훌리오 코르타사르, 주제 사라마구,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올리버 스톤, 노암 촘스키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과도 잘 아는 사이이다.

그렇다면 이런 사상과 친분 관계들이 피델 카스트로를 20세기의 신화적 인물로 만들었던 것일까 아니다. 그건 단지 카스트로의 일면을 보여주는 예일 뿐이다. 그의 신화는 일생을 살펴보면 잘 나타난다. 그는 미국 정부의 조종을 받던 바티스타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82명의 병력으로 게릴라전을 전개하여 전복시킨 다음, 쿠바를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 지역에서 제국주의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게 한다. 그래서 그는 후에 “나는 82명을 데리고 혁명을 시작했다. 만일 다시 혁명을 하게 된다면, 10명이나 15명과 함께, 그리고 절대적 신념을 가지고 할 것이다. 당신이 믿음이 있고 행동 계획이 있다면 아무리 적은 숫자라도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다.
이후 카스트로가 이끄는 쿠바혁명정부는 미국 정부가 조직하여 히론 해변으로 침투시켰던 용병들을 72시간도 안 되어 무찌른다. 또한 1962년에 그는 수십 개의 핵무기 공격을 받을지도 모르는 위험에서도 그 어느 것도 양보하지 않은 채 명예롭게 미국과 맞선다.

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정착시키면서, 직업도 없고 공부도 할 수 없었던 17세에서 30세까지의 모든 청년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대학을 점차적으로 전국의 읍 단위까지 설립함으로써, 쿠바를 세계에서 가장 지식과 문화가 많은 나라로 만들려고 한다. 그렇게 그는 <문화 없는 자유는 불가능하다>라는 호세 마르티의 신념을 실천한다.

한편 마이클 무어 감독의 <식코>로 국내에서 새롭게 관심을 끌게 된 쿠바의 의료체제도 카스트로가 이룬 성과 중의 하나다. 혁명 이후 쿠바인의 평균 수명은 15년이나 늘어났으며, 소아마비, 말라리아, 신생아 파상풍, 디프테리아, 홍역, 풍진, 이하선염, 백일해, 뎅기와 같은 전염병들은 퇴치된다. 또한 카스트로의 혁명은 의료서비스를 국민에게 다가가게 한다. 그것은 쿠바 국민들이 의료기관을 보다 손쉽게 접할 수 있게 하고, 생명을 보존하며, 고통을 완화시키기 위함이었다. 현재 쿠바의 의료기관들은 가장 심각한 질병의 치료제나 예방약을 찾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일하고 있다. 그래서 카스트로는 쿠바인들이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의료체계를 갖게 될 것이고, 계속해서 완전히 무료로 진료와 치료를 받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쿠바를 방문하는 사람은 종종 쿠바 내에 체 게바라나 카스트로의 동상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쿠바에서 그들의 동상을 발견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단지 체 게바라의 모습만이 혁명광장에 있는 내무성 건물 외벽에 “영원히 승리할 그 날까지”라는 글과 함께 새겨져 있을 뿐이다. 뿐만 아니라 거리나 기관에도 살아 있는 혁명 영웅의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그것은 혁명을 이끈 남녀들이 사람들이지 신이 아니라는 카스트로의 확고하고도 겸손한 생각에 기인한다.

그렇다면 카스트로는 동화의 주인공처럼 항상 이렇게 좋은 일만 했을까 쿠바 체제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카스트로가 체 게바라와 경쟁심을 느낀 나머지 절교했으며 정치적으로 많은 이견을 보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카스트로 본인은 “체는 전 세계의 본보기이며, 그것이 바로 체이다. 그 무엇도 파괴할 수 없는 도덕적 힘이 그에게 있다.”라고 말하면서, 그의 대의명분과 사상은 신자유주의가 판치는 이 시간에도 승리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즉, 두 사람의 불화는 미 제국주의가 날조한 생각이며, 체가 남긴 가장 위대한 것은 도덕적 가치와 양심이라고 평가하면서 가장 고귀한 인간적 가치를 상징하며 훌륭한 본보기라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반체제 인사의 탄압이나 동성애자의 탄압처럼 인권을 유린했다는 이유로 비판받기도 한다.

그는 『피델 카스트로: 마이 라이프』에서 그렇지 않다고 항변한다. 그러면서 반체제 인사들은 미국의 조종을 받는 일반 범죄인들이자 테러범들이었으며, 동성애자의 경우 생산보조부대를 창설하면서 그들에게 병역의 의무를 부과했기 때문에 오해가 발생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매우 중요하고 유명한 문화와 문학의 인물들, 아주 중요하며 이 나라의 자랑인 인물들 속에서 동성애자들이 있었고, 지금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우리나라에서 많은 배려를 받았고 많은 존경을 받았습니다.”라고 밝힌다. 하지만 레이날도 아레나스의 자서전 『해가 지기 전에』를 읽어보면 그의 말이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또한 토마스 구티에레스 알레아는 <딸기와 초콜릿>에서 1970년대 후반의 동성애 탄압을 고발하는데, 과연 쿠바 혁명영화의 대표자라고 일컬어지는 구티에레스 알레아 감독이 잘못된 사실에 바탕을 두고 영화를 제작한 것일까

피델 카스트로가 쿠바 내에서 이룬 성과는 정말 대단하다. 그러나 수많은 실수를 저질렀고, 카스트로 자신도 그걸 부인하지 않는다. 그는 혁명 내내 수없이 저질렀던 실수는 사회주의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누군가 알고 있다고 믿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그는 역사가 그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단지 오늘날의 투쟁과 전투로 인해 쿠바가 갖게 될 명성에 더욱 관심을 보인다. 역사를 통해 명예와 덕성을 위해 그리고 높이 평가받을 가치를 위해 죽어간 사람들은 그들의 가치를 우리에게 심어주었기 때문에 후대의 존경을 받는다. 수많은 논쟁에도 불구하고 피델 카스트로가 아직도 건재하고 있는 것은 올리버 스톤이 지적하듯이 그의 혁명 사상과 정치가 윤리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의 피델 카스트로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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