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라키스 | 작성일 : 2015-10-06 12:31:35 | 조회수 : 1,970 |
국가 : 멕시코 | ||
43+α(43 플러스 알파)
최 명 호(IIAS)
2014년 9월 26일과 27일, 게레로(Guerrero)주 이괄라(Iguala)시 아요치나파 사범대학(La Escuela Normal Rural Raul Isidro Burgos) 학생 여섯 명의 납치와 고문, 살해 사건 및 대학생 43명 실종 사건 발생했다. 시장 및 지역의원들과 결탁한 범죄 집단과 경찰의 소행으로 밝혀졌다.
학생들은 멕시코시티에서 있을 10월 2일 뜨랄뗄로꼬 학살 사건의 추모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멕시코시티까지 이동에 필요한 교통수단을 미련하기 위해 이괄라(Iguala) 시에서 버스를 점거했는데 같은 시각 이괄라 시장의 부인(Maria de los Angeles Pineda)이 자신이 이끄는 기관(Desarrollo Integral de la Familia)의 성과를 보고하는 파티를 개최하고 있었다. 근처에서 일어난 소요사태의 소식을 들은 시장 호세 루이스 아바르카(Jose Luis Abarca)은 부인이 주최하는 행사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학생들을 처리할 것을 지시했고, 이 과정에서 사망자 6명, 부상자 25명의 발생과 함께 43명의 학생들이 실종되었다. 이 사건은 1968년 일어났던 학생운동(El movimiento estudiantil de 1968)과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다.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일반적으로 ‘뜨랄뗄로꼬의 참사’라고 부르는 민간인 학살 사건과 관련을 맺고 있다. 올림픽을 반대하고 양심수 석방 등 반독재 투쟁의 성격이 강했다. 이 시위를 당시 멕시코 정부는 강경하게 진압했고 군병원에서는 267명의 사망자와 1200명의 부상자가 있었다고 보고했던 상당한 규모의 민간인 학살 사건이었다. 현재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은 사상자의 수는 44명이고 그 중에 34명만이 신원이 확인되었고 10명은 아직 신원이 파악되지 않았다. 냉전의 정점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당시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는 것으로 소위 전후세대가 성장하고 군국주의적 요소가 강하던 독재체제에 청년들이 저항한 사건이었다. 그리고 46년이 자나서 이 사건을 역사적으로 기리며 특히 소외된 멕시코의 농업 등 사회적 부조리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려던 학생들이 납치되었고 고문당했고 6명은 사망했고 43명은 실종상태이다. 멕시코의 현재 사정을 고려한다면 43명은 살해당한 후 유기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게다가 시장인 호세 루이스 아바르카가 다름 아닌 PRD(민주혁명당) 소속이라는 점도 큰 파장을 불러왔다. 얼마 전 시장주의자 혹은 자유주의자들의 정당인 국민행동당(PAN)과 선거 연대를 한 좌파 정당인 민주혁명당(PRD)의 경우 현 정권과 기득권 세력에 비판적인 정치세력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 사건을 통해 멕시코의 정치세력이 얼마나 타락했으며 지역 폭력조직과 얼마나 연계되어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환멸’이라는 바로크적 정서가 팽배할 때, 바로 그때가 변환의 출발점이라는 것은 역사가 보여주는 것이다. 랭보의 『지옥에서 보낸 한철』중 「굶주림」이란 시에 “이것들은 모두 한 배에서 나온 개새끼들이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사실 현재 여당인 제도혁명당(PRI)는 70년 이상 집권했으며 이후 정권을 잡았던 국민행동당(PAN) 그리고 좌파성향의 민주혁명당(PRD) 모두 창당한 세력이 모두 제도혁명당 소속이었다. 실질적으로 제도혁명당은 현재 모든 멕시코 정당을 낳은 모태(母馱)당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2015년 현재 멕시코의 환멸은 정치나 정치인 자체에 대한 환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소크라테스 : 그런데 글라우콘, 국가를 분열시켜 여러 개로 나누면 어떻겠나? 그보다 나쁜 일도 없겠지? 반대로 국가를 결합시켜 하나로 만들면 어떻겠나? 그보다 좋은 일도 없겠지? 글라우콘 : 당연합니다. 소크라테스 : 그렇다면 어떤 일이 발생했을 대 국민들이 희로애락을 같이 한다면, 그것은 단결되어 있다는 증거 아니겠나? 반면에 같은 일을 두고도 슬퍼하는 사람과 기뻐하는 사람이 양분돼 있다면 이는 그 국가가 분열되어 있다는 증거겠지? (…) 누군가 손가락을 다쳤다면 손가락분만 아니라 그의 몸 전체가 통증을 느끼네. 쾌락을 느낄 때도 마찬가지고. (플라톤, 국가론, p.155-156)
플라톤의 『국가론』에서 국가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를 말하는 것으로 우리 시대의 근대국민국가(nation-state)의 개념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다시 말하면 여기서 말하는 국가는 도시국가 혹은 한 도시정도를 의미하고 ‘국민’은 20세 이상의 성인 남성을 의미한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도시국가이기 때문에 희로애락이라는 감정을 교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감정의 공유가 현대 우리가 사용하는 ‘공동체’라 할 수 있다. 이 감정의 공동체는 규모, 소득수준, 지역 등으로 구분되지 않는, 다시 말해 객관적 기준으로 나눌 수 없는 애매한 부분이 있다. 한 국가를 하나의 공동체라고 간주한다면 한 사건, 혹은 같은 성격의 사건에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따라 공동체성이 높다 혹은 낮다고 평가할 수는 있을 것이다.
2014년 일어난 43명의 실종사건은 1968년 뜨랄뗄로꼬의 참사’의 증인들인 70세 이상의 멕시코 국민들과 그들의 가족, 친지, 친구들, 자식들과 2014년 자식과 친구를 잃어버린 10대, 20대와 40대 이상의 멕시코 국민들이 묘하게 겹치며 상승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단편적으로 보면 할아버지 때에 일어난 일이 손자 때 반복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광범위한 지역에서 산발적인 추모행사, 시위가 일어나고 있는 현재 멕시코 상황을 고려하면 적어도 소크라테스가 말한 감정의 공유가 일어난 것처럼 보이고 ‘공동체 의식’은 이를 통해 상당히 함양되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공동체에 자연재해 등 피할 수 없는 재난이 일어나고 이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공동체 의식이 함양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2015년 멕시코는 조금 다르다.
Fue el Estado.
국가였다. 시위현장에서, 추모행렬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구호가 바로 ‘국가였다 Fue el Estado’이다. 이 모든 비극의 원인, 혹은 범인은 바로 국가라는 것이다. 이 한 마디에 수많은 의미가 담겨있다. 그전 단순한 선악의 구분이라거나 독재와 반독재 투쟁이라는 냉전시대 라틴아메리카에서 볼 수 있었던 민주화투쟁과는 그 양상이 다르다. 멕시코의 상황은 선악을 대비시키는 범죄영화가 아니다. 경찰은 착한 편, 범죄자는 나쁜 편으로 나뉘어 선이 악을 물리치는 영화 속 상황은 멕시코의 실제 현실과 다르다. 국가기관 전체가 연루되어 있으며 세대 전체에 심각한 영향력을 미친다. 혈흔과 총격, 전쟁, 경찰, 군대, 살해자, 실종자, 죽음, 위험, 악, 공포, 야만적 행위 등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단어들이 다시 등장했다.
현재의 위기는 1980년대 국가와 경제의 근대화에서 기인한다. 1982년 초, 수도 근처의 이달고주에 위치한 툴라강 하수처리장에서는 시신 열두 구가 발견됐다. 희생자들은 모두 콜롬비아 지하조직에 속해 있던 사람들로, 이 조직은 은행 강도질을 하며 멕시코에서 코카인 밀매를 하고 있었다. 시경 총감의 지휘 하에 연방경찰과 동일한 형태의 교육을 받은 요원들이 스무 명의 범죄자를 체포했다. 그 가운데 여덟 명은 뇌물을 주고 풀려났으며, 나머지 열두 명은 수일 간 구타와 고문을 당한 뒤 처형되어 폐수에 시신이 버려졌다. 그로부터 30년의 시간이 흐른 뒤, 멕시코에서는 매일같이 똑같은 수법의 만행이 자행된다. 멕시코 국민들이나 다른 중미 지역 이민자들을 포함하여 1만 2천 명의 사람들이 실종됐음에도 당국은 정식 문건조차 작성하지 않았다. 과테말라와 가까운 남쪽 국경인 씨우다드 히달고 (Ciudad Hidalgo)부터 북쪽 국경의 주요 도시들까지 일반 여객열차가 아닌 화물 기차가 운영되고 있고 다양한 영화에서 소재가 되었던 것처럼 중미의 다양한 불법 이민자를 태우고 기차는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지역까지 운영되고 있다. 또한 멕시코의 불법 이민자들까지 소위 또르띠야 장벽을 넘고 있다. 합법적인 이민자를 제외하더라도 중미/남미에서 멕시코로, 멕시코에서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는 사람들을 난민으로 봐야 할지 아닐지는 상당히 논쟁적인 부분이다. 2014년 현재 미국 내 히스패닉의 수는 오천만을 넘어섰고 이 중 멕시코계 이민자들은 60% 이상이라고 한다. 2013년 현재 멕시코의 인구는 1억 2천만 명이다. 거칠게만 보아도 인구의 1/4, 25%가 미국으로 이주한 것이다. 이는 치명적인 숫자이며 난민의 규모로만 봤을 때, 간과하기 어려운 숫자이다. 또한 이 숫자는 멕시코 및 라틴아메리카의 정치/경제적 상황에 반비례할 것이다. 다시 말해 악화되면 될수록 그 수는 늘어만 갈 것이다. 현재 문제가 되는 시리아의 난민이 약 400만 명 수준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기간의 차이와 인구수의 차이가 있으나 간과하기 어려운 것이 중미/멕시코 불법 이민자 혹은 난민이다. 이는 현재 개발도상국 원조를 목적으로 하는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의 가입국이며 G20의 회원국이기도 한 멕시코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멕시코가 내전에 준하는 혼란기라는 것을 반증한다.
2006년 12월 펠리페 칼데론 대통령 취임 이후 ‘마약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후 현재까지 정부의 공식적인 발표에 의하면 34,612명이 사망했다. 하지만 실종자의 숫자를 감아하면 실제 사망자의 수는 이를 넘어설 것으로 본다. 또한 당시 칼데론 정부는 경찰병력을 동원하여 ‘마약과의 전쟁’을 수행하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부패가 적다고 판단한 군대를 동원했다. 이는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이 1980년 이후 군대의 화력에 버금갈 정도로 성장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어찌되었건 내전에 준하는 상황이 아니면 외부에서 침입하는 적을 막아내야 하는 자국의 군대가 자국민들에게 총부리를 돌렸다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군인들이 성폭력, 고문, 실종, 자의적 사격 등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멕시코 국립인권위원회는 군인에 의한 인권침해 신고 건수가 2006년 200건 미만이었지만 지난해는 1500건으로 급증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유엔은 군인들을 철수시킬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군대는 철수되지 않았고 민간인들은 부패한 경찰과 관료, 마약 카르텔 그리고 군대로부터도 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것, 민간인들을 핍박하는 모든 세력을 하나로 모아서 바로 ‘국가el Estado’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적(敵)이 국가라는 것은 국가의 개념, 근대국민국가의 개념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모순적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 일반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반응은 보통 2가지이다. 그 중 첫 번째는 앞에서 밝힌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희망이 사라졌으며 끝없는 환멸을 느끼게 되리라는 확신을 갖는 것이다. 현대적인 국제도시라든가 조화롭고 아름다운 사회, 차별 없는 사회 같은 유토피아적 환상은 이제 한낱 꿈이라고 치부하는 것이다. 진보에 대한 확인과 믿음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두 번째는 모순된 현실에 적응하는 것이다. 바람직하지 않은 그 현실에, 당혹스러운 그 현실에 서서히 적응해나가는 것이다. 디스토피아적 현실을 받아들이고 문명이 아닌 야만으로서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야만은 쉽게 약육강식(弱肉强食)의 법칙이 통용되는 것으로 마치 영화 매드 맥스와 같은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멕시코 민중의 선택은 이 모든 것의 변화를 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을 상징하는 것이 “국가였다 Fue el Estado”라는 구호인 것이다. 이것은 구호이면서 선언이다. 이것이 현실적인 결실을 맺지 못한다고 하고 거대한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2015년 9월 23일 미주인권위원회(IACHR)는 그동안 43명 학생의 실종 사건을 조사하고 나서 거의 모든 정부의 주장에 의문을 재기했고 명확한 증거가 없는 부실수사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현재 재수사 중에 있으나 진실이 얼마나 밝혀질 지는 미지수이다. 하지만 현재 멕시코 전체에서 일고 있는 시위는 기본적으로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공동체적 정서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나 그 기저에는 1968년, 아니 근대 국가 성립 이후 혹은 멕시코 혁명 이후 현재까지의 멕시코 역사에 대한 비판적인 관점을 공유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하루에도 수십 명의 시체들이 발견되고 기사화되고 있는 멕시코의 현실을 고려하면 43명이란 숫자는 그리 크지 않다. 2014년 8월, 수도 근처인 멕시코주 에카테펙운하 배수 작업 중 시신 마흔 여섯 구 발견되었고 그 중 열여섯 명은 여성의 시신으로 확인되었던 사건도 있었기 때문이다. 역사는 곧 시간과 기억의 문제다. 21세기 초 전쟁과 폭력으로 얼룩진 몇 년 동안 실종되거나 처형된 수천 명의 사람들은 당연히 그 처참한 죽음을 당한 사실에 걸맞게 전 세계적이면서 인도적인 차원에서 밝혀져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멕시코에서 자신의 삶을 살려는 사람들은 현재의 문제를 인지하고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며 하나의 공동체로서 감정을 나누어야만 한다. 과거는 어디 서류 안이나 인터넷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 기억이 만들어낸 현재의 감정을 충분히 실질적으로 해소해야 한다. 물론 감정의 해소만이 아니라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현실의 삶을 지켜내는 것이다. 또한 동시에 통치의 대상에서 다시 주권자가 되는 길이다.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을 만들려는 노력이야 말로 공동체를 회복시킬 가장 간단하면서 확실한 길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삶을 죽기 살기로 지켜내야 한다. 이것은 문명과 야만, 혹은 삶과 죽음의 생존권 투쟁이기 때문이다. 43명 그리고 무수한 알파들이 끊임없이 계속하여 모여야 하고 모이고 있는 중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Así se veía el Zócalo antes de iniciar 'Los Juegos del Hambre' #Droncita
https://www.facebook.com/rexistemx/videos/444301052438828/ 동영상 : 멕시코 시티 소깔로 광장과 각 지역에서 펼쳐지고 있는 추모시위 현장
사진1 1968년 10월 2일을 추모하고 43명을 기억하는 43-68이 하나의 구호 화되었다. 피로 얼룩진 멕시코 국기가 1968년과 2014년이 하나로 얽혀진 느낌이다. 사진 2 피로 얼룩진 멕시코 국기에 "이젠 그만 Ya basta!!" 라고 쓰여 있다. 상징하는 바가 적지 않다.
사진 3. 우리는 네가 죽이지 못한 학생들의 아이들이다. 1968년 '뜨랄뗄로꼬의 참사'의 생존자들의 후예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2014년 실종자들이라고 하면 그 의미가 더 확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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