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라키스 | 작성일 : 2014-07-23 11:56:06 | 조회수 : 1,362 |
국가 : 브라질 | 언어 : 한국어 | |
원문링크 : http://www.emerics.org/lac/column_interview/column.do?action=detail&brdctsno=141923 | ||
구분 : 문화 | ||
출처 : emerics | ||
발행일 : 2014-06-30 | ||
개막전 시위사태와 현지 안전 문제로 말도 많았던 브라질 월드컵이 어제 개막함으로써 한 달간의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자연, 인간, 축구를 주제로 열린 화려한 개막식과 브라질과 크로아티아의 역전 드라마가 있던 첫 경기에도 불구하고 아직 국내나 브라질 현지의 월드컵 열기가 금방 달궈지지 않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세월호 참사의 여파가 아직 가시지 않아 함부로 분위기를 띄울 수도 없고, 줄 초상집을 다녀온 것 같은 우리 국민의 마음도 쉽사리 흥이 나지 않는다. 게다가 우리 대표 팀의 평가전에서의 어이없는 연속적인 패배는 우리 대표 팀이 첫 승전보를 올리지 않는 한 우리를 과거의 붉은 악마들이 광장을 누비던 때로 쉽사리 돌아가게 할 것 같지 않다. 언론을 통해 본 월드컵 주최국 브라질의 현지 분위기도 아직 달아오르지 않고 있다. 다행히도 지하철 파업사태는 노조 측의 양보로 월드컵 기간 동안의 운행 중단만은 막았지만, 적어도 브라질의 4개 도시에서 시위가 있었고 일곱 명이 부상을 당했다. 경찰은 상파울루에서 복면을 쓰고 시위를 벌인 일단의 시위대를 최루탄과 고무탄으로 진압했다. 세계 언론은 물론, 국내 언론은 작년부터 월드컵 주최국 브라질 국민들의 뜻밖의 월드컵 반대 뉴스를 접해 왔다. 올
2월에 Datafolha 연구소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52%의 브라질 국민만이 월드컵 행사를 지지했다. 2008년의 79%의 지지를 생각한다면
브라질에서의 월드컵 열기는 줄곧 식어온 셈이다. 브라질은 물론 중남미 하면 축구의 나라들이고, 정열의 나라들로 세계에 알려져 있다. 오죽하면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는 축구 때문에 전쟁을 한 나라들로 알려져 있고, 1994년 월드컵에서는 콜롬비아 대표 팀의 에스꼬바르 선수가 자책골을 범했다는 이유로 살해까지 당한 바 있다. 우리는 중남미 사람들 하면 정열의 라틴댄스, 삼바, 살사, 메렝게, 레게를 즐겨 추며, 축구에 모든 것을 걸고, 사나흘에 한번 씩은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로 이해하고 있다. 며칠 전에도 국내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은 아이티가 내전의 와중에도 아이티 대표 팀과의 경기를 위해 온 브라질 대표 팀을 환희의 눈물로 맞이하는 아이티 축구팬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축구가 이뤄낼 수 있는 기적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었다. 또 힐링 캠프에서는 국제적인 오페라 가수 조수미 씨가 방송 출연하여 그녀의 축구에 대한 사랑과 함께 그녀를 공연 장소에 데려다 준 인상 깊은 브라질 운전기사에 대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하였다. 이 브라질 운전기사가 얼마나 삼바를 사랑하던지 매 신호등이 정지 신호를 보낼 때마다 차에서 내려서 삼바 춤을 추고 정지 신호가 바뀌면 다시 운전을 했다는 것이다. 작년에 한국을 방문한 브라질 동포 한인 작가 이규석 씨는 부산 외대 중남미 지역원에서 열린 강연회 도중 삼바 음악을 틀어 주면서 청중들이 경직되어 있다며, 브라질에서는 삼바를 틀면 그 누가 말을 안 해도 청중들이 흥에 젖어 자연스레 삼바 춤을 춘다고 지적하였다. 이규석 작가가 지적한 것처럼 브라질 사람들, 그리고 좀 더 넓게 중남미 사람들은 흥이 많다. 그리고 그가 지적한
것처럼 내일 굶어도 오늘 흥이 나면 삼바를 추고, 축구를 하며, 파티를 벌인다. 중남미로 가는 많은 선진국 관광객들이 중남미에 빠지는 것도
이러한 흥 때문이며, 이러한 흥이 하나의 문화 경쟁력으로 전 세계를 지나 우리나라에 까지 다가왔었다. 이제 우리나라 사람들도 라틴 댄스에 빠져
정열의 댄스를 즐기며 TV에서도 라틴 댄스 경연 대회가 줄곧 방영된다. 그러나 이들 중남미의 특화된 문화 상품들이 중남미 국가들을 부유하게 만들었을까? 중남미에서 관광수입이 GDP의 10%를 육박하며 중남미의 관광대국으로 자리 잡은 멕시코가 우리보다 생활수준이 높을까? 아니면 천문학적인 연봉의 축구 스타들을 거느리고 있는 브라질이 축구 문화 상품의 수출로 브라질 경제에 활력을 돋게 하고 있을까? 또는 삼바와 보사노바의 전 세계적 유행이 브라질에 얼마의 경제적 효과를 끌어들여 왔을까? 이명박 정부 시절, 또는 그 이전 정부 시절에도 각종 국제회의와 국제행사의 천문학적인 경제 효과에 대해 경제학자들이 언급한 것이 우리의 기억을 새롭게 한다. 또, 우리는 김연아와 싸이를 비롯한 한류가 창출하는 엄청난 경제 효과를 말하며, 문화 경쟁력, 문화 경제학을 논하고 있다. 그러나 60여 년간 축구 강국이자 삼바와 보사노바를 전파한 브라질, 탱고 문화 상품을 수출한 아르헨티나, 기타 중남미 국가들은 여전히 선진국의 반열에 들지 않음은 물론 실제로 이들 국가들을 방문한 사람들이면 중남미 어느 나라 빠질 것 없이 상당수의 국민들이 가난에 신음함을 볼 수 있다. 물론, 월드컵 또는 올림픽이 한 나라의 경제 성장에 뒷받침이 될 수 있다. 논란이 될 수도 있겠지만, 우리나라는 월드컵과 올림픽 주최로 비교적 상당히 덕을 본 나라들에 속할 수 있다. 국제 스포츠 및 문화 행사를 벌여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비단 국내에서 선거철의 지자체장들만이 내놓는 공약이 아니다. 이른바 선진국을 포함한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국제 스포츠 및 문화 행사를 통한 손쉬운 외화벌이와 경제적 파급 효과를 상정하며 경쟁을 하는 바람에 FIFA를 비롯한 각종 국제연맹들은 로비와 뇌물 수수의 추문으로 얼룩지고 있다. 결국, 갈수록 국제 스포츠 및 문화 행사를 치루는 대가는 커지고 실제로 수지타산을 해보면 자칫 밑지는 장사가 될 수 있다. 브라질 월드컵의 경우도 브라질 정부가 내놓은 천문학적인 경제 효과가 과장되었다는 지적이 많다. 물론 브라질내의
월드컵 반대론자들의 반대논리에도 불구하고 브라질 월드컵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대차대조표는 월드컵이 끝난 다음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많은 전문가와 스포츠 및 경제 기자들이 지적하듯이 브라질 대표 팀이 어느 정도의 성적을 내느냐 내지 치안문제가 그 대차대조표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요소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정작 주목해야 할 것은 브라질 국민들의 의식의 변화이다. 지난 룰라 정부는 우리나라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이룩한 경제 발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경제 발전을 이루었고 오늘의 흥 내지 즐거움뿐이 모르는 듯한 브라질 국민에게 내일의 흥을 생각해 보도록 만들었다. LG 경제 연구원의 김형주 씨가 지적하듯 과거에 브라질에서는 서민 청소년들의 유일한 꿈은 축구였고 희망 잃은 서민들의 유일한 위안은 삼바였을 것이다.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조수미 씨가 언급한 그 운전기사가 과연 즐거워서 매 신호등마다 나와서 춤을 췄을까? 아니, 그 반대는 아니었을까? 매 순간 힘들어서 삼바 춤을 춘 것은 아니었을까? 멕시코 길거리에서 만나는 마리아치들, 중남미 도시의 거의 모든 광장에서 노래와 춤으로 살아가는 거리의 예술가들, 그리고 중남미 거리에서 외국 관광객들에게 정이 철철 넘치도록 친절을 베푸는 중남미 사람들, 그들은 타고나기를 정열의 심장을 갖고 태어난 것일까? 총, 균, 쇠의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환경이 인간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연구하여 현재도 국내에서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라 있다. 그에 의하면 환경이 인간의 문명과 문화의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설파한다. 중남미인들이 정열적이고 브라질인들이 축구를 잘 하는 것도 환경의 영향이었을까? 뜨거운 태양이 중남미인들의 심장을 들끓게 하고 드넓은 브라질의 초원이 브라질인 들이 축구를 잘 하게 만들었을까? 19세기에 한 때 유행했던 환경 결정론은 인종간의 우월을 논하게 할 수 있는 위험한 이론이었다. 자연 환경이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보다는 인간이 만들어낸 사회 환경이 인간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친다. 멕시코 철학자 사무엘 라모스(Samuel Ramos)는 일찌감치 스페인인들의 식민지배가 멕시코인의 사고에 미친 영향을 논하였다. 한국은 조용한 아침의 나라이고 독일인은 철학적이며, 중남미인들은 춤 잘 추고 공 잘 차는 민족성을 타고 났는가?
이제 세계 국민들은 우리를 더 이상 은자의 나라에 숨어사는 사람들로 보지 않고, 우리도 우리 자신을 조용한 아침의 나라의 국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한강의 기적과 월드컵, 올림픽을 이뤄낸 역동적인 국민이라고 생각한다. 중남미인 들이 춤 잘 추고 공 잘 차는
것은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흑인들의 문화와 스페인인들과 포르투갈인들이 건네준 지중해 문화가 중남미의 환경과 잘 어우러져 이뤄낸 결과물 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19세기와 20세기 초 제국주의가 세계를 휩쓸 때, 강대국들이 그 주변 국가들을 사탕수수, 바나나, 커피를 생산하는 나라들로
특화시켜 놨듯이 우리가 브라질을 축구라는 문화 상품이 특화된 나라로, 중남미 국가들을 친절과 정열이 특화된 나라로 바라보는 것은 어리석은 시대의
유산일지도 모른다. 브라질이 문화상품으로 축구를 특화시키고, 중남미인들이 라틴댄스를 특화시키는 것에 필자는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말로, 브라질인 들이 축구만 문화산업으로 특화시키거나 - 중미의 아주 작은 소국들을 제외하고 - 중남미 국가들이 관광 사업에만 목을 매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오늘날의 키워드는 다양성과 그 다양성에 바탕을 둔 조화이다. 우리가 한류를 아무리 떠들어 대도, 브라질 축구가 세계를 석권해도,
문화 대국, 스포츠 대국은 다름 아닌 경제 대국인 미국이다.
박호진 부산외국어대학교 중남미지역원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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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칼럼_20140614]박호진_문화+경제학으로+바라+본+2014+브라질+월드컵.pdf [31건 다운로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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