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컬 오디세이_구경모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교수 현지인이 즐겨 찾는 아순시온 신도시에 위치한 한식당의 모습. 사진=구경모
대부분의 중남미의 문화가 그렇듯, 파라과이에도 원주민 문화가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유럽 문화가 지배하고 있다. 그렇기에 아시아 문화는 오리엔탈리즘적인 측면에서 일부 매니아들에 의해 소비되는 경향이 있다. 중남미에서 향유되는 애니메이션과 스시 등의 일본 문화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래서 필자는 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파라과이에서의 한국 문화 영향력에 대해 꽤 의구심이 들었다. 왜냐하면 당시 한국 드라마나 음악에 대한 홍보가 대사관 중심으로 진행됐고, 그것을 듣고 보는 현지인들도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갖는 층들은 기존의 아시아 문화, 특히 일본 문화에 관심을 두다가 한국 문화로 넘어온 경우가 많았다. 그런 상황을 알고 있던 터라 파라과이에서 한류가 확산되더라도 일본 문화를 대체하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을까라고 추측했었다. 다시 말하면, 한류가 아시아 문화에 관심을 가지는 매니아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수준에 머물 것이라 생각했다.
해가 갈수록 그 예상이 약간씩 빗나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을 무렵 현지인 친구가 보내준 사진 한 장은 한류가 파라과이 사회에서 일본 문화가 가졌던 영향력 이상 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게 하였다. 올해 6월 현지인 친구가 SNS로 파라과이 마트에서 홍보하는 김치 사진과 관련된 상황을 문자로 보내왔다. 문자 내용은 한국식품점에서만 판매하던 김치가 아순시온에 소재한 마트 곳곳에 진열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현지인 친구는 한국식품점에서만 볼 수 있었던 김치가 자신이 사는 동네 근처 마트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빨리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이 친구도 그럴 것이 교민들을 사이에서만 소비되던 한국 음식이 파라과이 전체로 확산되는 현상이 놀랍고도 신기했던 것이다. 대중문화라는 측면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나타나기 시작한 때는 2005년 즈음으로 기억한다. 한국 정부가 드라마를 홍보하기 위해 가을동화와 겨울연가를 레드 과라니 TV채널에서 연달아 방송하면서 부터였다. 사실 이 때까지만 하더라도 한류의 영향이 미미할 것으로 생각했다. 당시에는 한류가 드라마와 음악 등 대중문화 중심이었는데, 중남미의 경우는 서구에 영향을 많이 받아 한류를 접하는 층들이 제한적이었다. 이러한 한류의 확산마저도 국가 정책에 의해 추진되는 면이 있어 한국의 대중문화가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일례로 아이돌에 대한 팬덤은 존재했지만, 대중적으로 확산되기에는 그 한계가 분명해 보였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파라과이 부모들이 아이돌을 보는 시선 때문이었다. 파라과이 부모들은 한국 아이돌의 스타일링(딱 붙는 바지와 진한 화장, 염색한 머리카락)이 게이처럼 보인다고 생각하여 자녀들이 한국 아이돌 음악 듣는 것을 꺼려하였다.
이런 흐름은 2012년 강남스타일이 유행하면서 점차 희미해졌다. 강남스타일이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파라과이에서도 한국을 대표하는 대중문화의 아이콘이 되었다. 특히 유튜브 등의 뉴미디어의 출현과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한류가 파라과이 사회에서 대중화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공교롭게도 같은 해에 현대자동차가 이웃 국가인 브라질에 현지 공장을 설립하면서 협력기업이 파라과이에 진출하였다. 이 무렵에 LG와 삼성전자의 제품들도 파라과이에서 고급 가전으로 인기를 끌고 있었다.
파라과이에서 한국의 영향력은 유사한 경로를 경험한 일본과 비교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당시 한국의 대중문화와 공산품들이 어느 정도 인지도가 생겨났음에도 여전히 파라과이에서는 도요다와 혼다, 닛산의 위세가 현대와 기아, 쌍용이 따라가기에 벅차보였다. 그리고 아순시온 곳곳에 현지인들이 경영하는 스시집은 한국 음식이 저렇게 대중화 될 수 있을까?, 그리고 과연 향이 강하고 매운 한국 음식이 현지인에게 자연스럽게 선택을 받을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게 했다. 왜냐하면 이 당시만 하더라도 한국 라면 한 젓가락을 권하면 현지 친구들이 맵다고 발을 동동 구르며 물을 달라고 호들갑을 떨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상황은 파라과이에서의 한류가 ‘일본이 걸어온 길’과 유사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한류가 ‘일본의 길’로 향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길’로 갈 것인지를 예측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김치를 스시에 대입해보면 어느 정도 그 ‘길’을 추측할 수 있다. 내륙국인 파라과이에서는 어패류를 접하기가 쉽지 않아 스시가 일종의 건강식으로 유행하고 있다. 아직은 김치도 비슷한 맥락에서 확산되고 있다. 파라과이 사람들은 아시아 음식이 채소 위주이기 때문에 건강에 좋다고 인식하고 있다. 김치도 육식을 주로 하는 파라과이 사람의 건강을 지켜줄 수 있는 음식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처럼 김치가 또 다른 스시로 남을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여부는 한류의 확산이라는 맥락에서도 중요할 수 있겠지만, 김치의 유행이 아시아 문화에 대한 전형적 인식을 넘어설 계기가 될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구경모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교수 영남대에서 사회인류학 및 민속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에서 연구교수를 거쳐 교수로 재직 중에 있다. 남미 남부지역의 민족과 종족, 이주, 불평등에 관한 논문과 저서를 출간했으며,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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