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라키스 | 작성일 : 2022-06-03 15:34:07 | 조회수 : 1,975 |
국가 : 브라질 | 언어 : 한국어 | |
원문링크 : https://www.ddanzi.com/ddanziNews/735927907 | ||
출처 : 딴지일보 | ||
발행일 : 2019 | ||
2019년 1월 1일, 보우소나루의 대통령 취임식. 출처-<BBC>
2019년 대선에서 남미의 트럼프로 불리는 극우 인사 보우소나루가 브라질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대통령 연임제가 있는 브라질은 2022년 10월 그의 재신임을 묻는 대선이 치러질 예정이다.
현재 임기 말 그의 지지도는 20% 선에 그치고 있는 터라 그의 정치적 롤 모델인 트럼프의 전철을 밟는 모양새다. ‘호형호제’하던 북미와 남미 두 극우 대통령의 ‘화려한’ 앙상블이 막을 내리게 될 전망이다. 다수 유권자의 선택을 따르는 민주주의 원칙이 지켜진다면 말이다.
대선은 아직 수개월 남았으나, 상황이 크게 변할 것 같지는 않다. 지난 2년간 코로나 정국에서 그가 보인 어이없는 ‘헛발질’과 막말 등의 행보로는 현재 최악에 이른 지지세를 끌어올리는 데는 한계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코로나는 그저 가벼운 감기일 뿐이라며 마스크 사용도 거부한 그는 정작 코로나 확진 후 군 병원에서 치료받아야 했다. 현재 그의 코로나 백신접종 여부는 이미 ‘국가기밀’에 부쳐진 상태다.
보우소나루 극우 정치의 핵심은 자신의 지지기반에 의존한 혐오와 배제전략이다. 장기적 국가 전략이나 정책이 아니라, 소수 특권 계층의 이익을 보장하는 것이 결국 국가 전체와 국민 모두를 이롭게 한다는 근본적인 믿음이 깔려있다. 엘리트주의의 또 다른 이름인 ‘다수 배제주의’다.
브라질 사회계층의 구성을 보면 다수를 배제하는 보우소나루식 ‘민주주의’를 어렵지 않게 식별할 수 있다. 소수의 유산계급과 중산층을 제외한 다수 빈곤계층을 소외시키고, 개조의 대상으로 삼으며 가난을 기형적 사회구조의 산물이 아닌, 오롯이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긴다. 이를 위한 극우들의 ‘자유’와 ‘성공 신화’는 극에 달한다.
따라서 극우 정권이 들어서는 곳에서는 어김없이 민영화가 확대되고 기업 중심의 개발 담론이 득세한다. 무분별한 개발에 따른 환경파괴와 기후변화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는 와중에 보우소나루 정권하에서 아마존 정글의 황폐화는 가속화되었다.
글로벌 금융자본의 투자를 받은 광산채굴 기업들은 이미 영국 런던 면적의 3배에 해당하는 아마존 지역에 수백 건의 개발허가 신청을 해놓은 상태다. 보우소나루가 재집권한다면 개발은 급물살을 타게 될 것이다.
벌채된 아마존 나무들. 출처-<AFP>
그뿐 아니라 광산채굴 업자들이 지목한 지역 대부분은 브라질 토착 원주민들이 촌락을 이루며 사는 거주 지역이다. 이들 토착민이 보우소나루 정치가 노골적으로 배제하는 계층 중의 하나라는 사실은 새삼스럽지 않다. 그가 이루려는 새로운 브라질에는 이들이 설 자리는 애당초 없었다. 그의 정치는 ‘선택받은 자’라는 극단적인 기독교 복음주의를 바탕으로 ‘우리’와 ‘그들’을 나누는 이분법에 기초한다. ‘보우소나루식 인간 식별법’인 셈이다.
‘빈곤한 정치 철학’의 결과
과거 군부독재 시절, 군인 엘리트 출신인 보우소나루는 2019년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거의 무명에 가까운 정치인이었다. 그런 그가 정권을 창출할 수 있었던 건 브라질 개신교 복음주의 급부상과 무관하지 않다. 당시 약 1천 1백만에 달하는 개신교 신자 약 70%가 그를 지지하며, 중산층과 더불어 그가 대통령이 되는데 크게 일조했다. 그의 정치적 슬로건에서 ‘하나님’이 빠지지 않는 이유다.
예수를 위한 행진 행사에 참여한 보우소나루. 출처-<로이터>
보우소나루는 군부독재 시절에는 엘리트 군인으로, 민주주의가 들어서는 1985년 이후에는 자유를 옹호하는 ‘자유주의자’로 거듭난 듯 보이지만, 실제 그의 빈곤한 정치 철학은 종교가 대신한 것에 불과하다. 즉 종교의 절대자 하나님의 이름으로 차별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그릇된 종교관에 기대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최근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무속정치’의 논란도 어쩌면 정치 철학의 빈곤이 가져온 불가피한 서글픈 현실일지도 모르겠다. 합리적 이성과 철학의 빈곤이 종종 중세 시대와 같은 ‘천상계’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은 어쩌면 만국 공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보우소나루를 비롯한 브라질 극우 정치인들의 정치 철학 부재를 보여주는 다른 사례도 있다. 보우소나루의 주요 정치적 활동무대인 리오자네이로는 합법적·비합법적 총기 거래, 마피아 등 범죄조직의 온상인 곳이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 중 하나다.
개인의 총기 소유가 늘면 범죄자가 감소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일까. 집권 내내 개인 안전을 위한 총기 소지를 공공연하게 독려한 덕에 총기 거래가 2배 가까이 늘었다. 수도 브라질리아(Brasilia)에서는 500% 가까이 증가했다. ‘거리에 범죄자가 많은 이유’에 대해서도 ‘감옥이 부족해서’라는 주장을 거리낌 없이 한다. 참으로 허탈한 현실 인식이다)
브라질을 움직이는 핵심 세력, 군부
앞서 언급했듯,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과거 군사독재 시절 엘리트 군인 출신이다. 그렇다면 현재 군부와 보우소나루 대통령과의 관계는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보우소나루는 군부와 실질적인 정치적 ‘공조’ 관계를 이용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브라질은 35만에 가까운 군병력을 보유하며 미국 다음으로 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군대 규모를 가지고 있지만, 핵무기는 고사하고 미사일 발사 능력도 없으니 진정한 의미에서의 군사 강국은 아니다. 역사적으로도 19세기 초중반 파라과이, 우루과이와 치른 두 번의 전쟁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자국민에 대한 국가폭력, 즉, 내부의 ‘적’으로 규정한 국민을 정치적으로 탄압하는 국가 기구에 불과했다.
1964년 군사쿠데타를 정점으로, 남미에서 가장 악명 높은 군사독재(1964-1985)를 20여 년간 유지했고, 브라질 ‘민주화’가 시작된 1985년 이후에도 군부의 정치적 영향력은 그대로였다. 오히려 군사독재가 끝나고 민주화되는 지난 30여 년간 브라질 군부가 막후정치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현재 군부독재를 걸쳐 축적한 이들의 기득권은 공고하다. 군부의 장성들이 정부의 내각을 구성하는 일이 더는 낯선 풍경이 아니며, 브라질 46개 공기업 중 석유와 전기회사 등을 포함한 16개의 기업을 이들이 통제한다. 국가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기업의 61%를 직접 관리함으로써, 그들의 물적 토대는 견고하고 안정적이다.
지금까지 브라질 막후 정치의 핵심 세력으로만 머물던 군부가 2019년 보우소나루 집권 이후 그 존재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보우소나루 집권과 동시에 행정부는 물론 입법부와 사법부에도 군부 출신의 인사들로 채워졌다.
국영기업에 대한 군부의 장악은 보우소나루 집권 3년 만에 10배 가까이 증가했다. 2010-2020년 사이엔 2만 5천 명에 이르는 군부 인사들이 선출직으로 정치에 입문하려 했다. 이들 중 87%는 우파 정당 소속이었으며, 1,860여 명이 당선되었다.
보우소나루(좌)와 윌터 브라가(우). 출처-<로이터>
얼마 전 보우소나루는 23명의 장관을 해임했는데, 이들 모두 선출직으로 출마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중 국방부 장관 월터 브라가(Walter Braga)는 10월 대선에서 보우소나루의 정치적 동반자로 등판할 것으로 보인다.
‘좌파 정권’의 실패로 정권 교체가 되었나
2000년대 초반 노동자당(PT) 출신 룰라(Lula)의 개혁 정권 10여 년 만에 다시 극우 정치로 선회한 이유는 무엇일까.
룰라의 당선(2003)은 남미는 물론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정치적 ‘대사건’이었다. 수많은 이들에게 진정한 의미의 정치와 사회 개혁이 무엇인지 보여줄 것만 같았다. 비록 룰라 집권 이후 기존 정치권과 타협한 부분이 있고, 우파 정당의 기업가 출신을 정치적 동반자로 선택하는가 하면, 급기야 노동자당을 특정 계급이나 이념을 대변하지 않는 국민정당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하는 등, 그의 정치공학적 행보가 브라질 사회 전반의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개혁을 원했던 이들에게 적잖은 실망을 안겼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룰라 정권의 국가 정책 노선이 친노동자·민중적으로 바뀔 것이라는 데는 큰 이견이 없었다.
2005년 한국을 방문한 룰라 브라질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출처-<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집권 시기(2003-2011)에 펼친 그의 정책은 그를 지지한 유권자들의 환영을 받았다. 빈민구제 사회프로그램, 교육, 의료, 주거지원 등과 같은 광범위한 사회정책을 시행했고, 최저임금 개혁을 통한 노동자 임금 보장과 일자리 창출을 확대했다.
2008년-2011년 사이 브라질 실업률은 30%가량 감소했고, 공공부채는 줄었으며 외환보유도 늘었다. 2011년 임기 말 룰라의 지지율은 80%에 육박했고 대중적 인기는 여전히 압도적이었다. 그의 인기는 퇴임 후에도 이어졌다. 따라서 룰라의 이른바 ‘좌파 정권’을 실패한 정부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룰라를 제거한 군부, 보우소나루를 대통령으로 만들다
오히려 문제는 룰라 본인이 2019년 대선 출마를 앞두고 벌어진 부패 스캔들이었다. 이는 같은 노동당 출신으로 룰라의 후임 대통령이 된 브라질 헌정사상 첫 여성 대통령 ‘지우마(Dilema)’가 탄핵을 당하면서 시작되었다. 지우마 대통령은 과거 군부독재 시절 반독재 게릴라 활동을 했던 인물로 대통령 재임 시기 군부와 각을 지고 있었다는 후문이 있다.
탄핵당한 직후, 지우마 호세프. 출처-다큐멘터리<위기의 민주주의>
2019년 대선을 앞두고 룰라는 뇌물과 돈세탁 혐의로 검찰에 기소되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권의 끝없는 공방인 부패 스캔들이 룰라의 발목을 잡은 것인데, 룰라는 혐의를 부인했고 검찰은 무리한 기소를 강행했으며, 군부는 연방대법원에 노골적으로 압력을 가했다. 일사천리로 진행된 기소로 룰라는 피선거권 자격이 박탈되었고, 2019년 대선에 출마하지 못하게 됐다. 룰라의 출마가 곧 당선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여론이 우세했다는 사실과 무리한 기소로 룰라의 피선거권이 박탈된 것은 과연 단순한 우연일까.
2019년 대선은 룰라를 ‘제거’한 이후 치러졌고, 이는 보우소나루 당선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이 사건을 흔히 사법 쿠데타로 규정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사법부는 그저 거들 뿐, 브라질 막후정치의 핵심인 군부의 영향력이 짙게 드리워진 사건이다.
이 사건을 다뤘던 연방대법원이 군부의 협박과 조언에 따라 움직였다는 사실은 드러난 상태다(관련 기사 링크). 지난 대선에서 보우소나루를 무명 정치인에서 일약 대통령으로 만든 실질적인 정치력은 브라질 막후정치의 핵심인 군부로부터 나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군부와 부활하려는 룰라
현재 군부는 앞으로 있을 대선에서 그들의 기득권과 정치적 영향력을 보장해줄 수 있는 안전한 ‘대안’을 모색 중이다. 보우소나루의 저조한 정치적 인기와도 무관하지 않은 군부의 복잡한 속내가 엿보인다. 보우소나루는 재집권을 위해 군부가 필요하지만, 군부는 보우소나루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 대안 중 하나로 룰라 전 대통령을 뇌물죄로 기소, 피선거권을 박탈한 일등 공신으로 일약 국민적 ‘스타덤’에 오른 판사 ‘세르지오 모루(Sergio Moru)’도 포함돼 있었다(그러나 모루는 3월 말에 대선 레이스에서 사퇴했다).
(모루는 판사였으나, 브라질은 우리와 사법체계가 달라 연방 판사가 수사를 지휘할 수 있다. 검찰은 기소 권한만 갖는다. 해서 일명 ‘세차 작전’이라 불리는 룰라 구속 사건에서 모루의 역할은 우리의 검찰과 같다고 보면 된다)
브라질 검찰은 ‘룰라가 아파트를 뇌물로 받았다는 증거가 없다는 사실이 바로, 룰라가 아파트를 뇌물로 받은 것을 숨긴 증거’ 라며 그를 기소했다. 해당 사진은 소환 조사에서 모루 판사에게 하소연하는 룰라의 모습. 출처-다큐멘터리<위기의 민주주의>
브라질 민주주의는 정치에서 군부를 제거하지 못했다. 그것은 룰라 집권 시기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살아남은 군부는, 이후 지우마 호세프(Dilema Rousseff)를 탄핵시켰다.
최근 모든 여론 조사에서 룰라의 지지율이 보우소나루 대통령을 거의 두 배 가까이 앞지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룰라는 피선거권을 박탈당했던 뇌물 혐의에 대해 연방 대법원에서 무효 판결을 받음으로써 피선거권을 회복했고, 2022년 대권 도전을 선언했다). 이 같은 추세라면 룰라의 당선이 유력하지만, 정치권력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군부가 쉽게 저지될까.
2021년 3월 기사.
이미 군부의 움직임은 심상치 않다. 보우소나루는 대선 패배는 곧 ‘부정선거’로 규정 지을 준비를 이미 하듯 현 선거 시스템의 투명성을 문제 삼고 있고, 군부는 연방 대법원의 어떤 판결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지난 3월에는 현 국방부 장관이 1964년 쿠데타와 이후 20여 년간 지속된 군부독재의 정당성을 주장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군부 정치의 해체 없이 정치개혁은 이뤄질 수 없다
만약 이번 대선이 보우소나루의 당선으로 이어진다면, 그동안 막후 정치에 머물러 있던 군부가 정치권에 대거 진출함으로써, 군부 쿠데타 없이 브라질 정치권이 ‘군사화’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미 여러 장성이 보우소나루의 정치적 동반자로 선언한 상태다.
극우 파시스트 성향의 보우소나루 주요 지지자 상당수가 극우 파시스트 성향의 과격한 무장 집단이라는 것도 변수다. 보우소나루의 극우 지지자들로부터 룰라에 대한 살해위협이 계속되는 만큼 룰라 측에서는 수사를 공식적으로 요청한 상태다. 단순한 위협으로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10월 대선에서 룰라가 당선되더라도 브라질의 정치가 이른 시일 내 안정을 찾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오는 10월 브라질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가 문제 이전에, 이를 둘러싼 적폐 기득권 권력(군부, 검찰 등)의 해체 없이 과연 민주적인 국민의 선택이 가능하냐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출처-<AP>
브라질 정치에서 군부는 이미 쉽고 간단하게 제거할 수 없는 기득권 세력이 되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국가폭력을 독점하고 합법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 기구라는데 있으며, 그 막강한 권한이 국민이 아닌 소수 군 엘리트가 통제하는 권력으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2003년 브라질 노동자당은 개혁 세력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13년간 정권을 잡았으나, 군부독재의 과거유산, 즉 군부의 정치개입과 그 기득권을 해체하지 못했고, 개혁에 대한 의지조차 볼 수 없었다는 혹평을 받는다. 그리고 룰라는 이제야 대선 공약으로 보우소나루 정권이 공기관에 임명한 8천여 명의 군부 인사들을 공직에서 해임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이에 대한 군부의 반발이 벌써 만만치 않다.
국내·외 지지 세력으로부터 개혁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노동자당 두 대통령은 결국 구 기득권 세력의 정치적 ‘저항’을 막지 못했고, 그 결과, 룰라는 감옥에 갔고 지우마는 탄핵을 당했다. 적폐 정치의 자양분인 부패한 기득권 권력의 온전한 해체 없는 개혁이라는 것은 가능한 것일까. 브라질의 경험은 분명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정이나 (쿠바 아바나 의과대학, 중남미 사회인류학 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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