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기 해외문화탐방 CROSS-BORDER 프로그램 활동 보고서 <아마존 通하다 - 이 동현>
작성자 : 라키스 작성일 : 2017-03-10 16:38:59 조회수 : 212

 

제 1기 해외문화탐방 CROSS-BORDER 프로그램 활동 보고서

아마존 通하다


중남미학부

중남미 비즈니스 연계전공

20130376 이 동현

 

 

 

야수니 국립공원은 습지, 늪, 강, 열대우림으로 이루어져 있는 지구 최대의 생태 다양성을 갖고 있다. 이 지역은 예전부터 풍부한 석유자원과 에콰도르 정부의 아마존개발 의지로 인해 불타고 나무들이 벌목되고 석유 추출로 인한 수질오염과 탄소배출로 황폐화가 되었다. 개발을 하는 동안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와오라니와 키추아 부족은 별다른 저항도 못하고 땅을 뺏겼고 개발의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야수니 개발은 애초에 원주민들을 위한 것이 아닌 국부를 위한 일이었고 정부는 부를 얻기 위해 가장 쉬운 방법이 땅 속의 석유를 추출하는 방법을 선택 했을 뿐이다. 이 개발은 과거에는 TEXACO라는 미국 정유사에 의하여 그리고 최근에는 중국 석유기업에 의해 진행 되었다. 특히 에콰도르는 기술 부족으로 인해 중국으로부터 차관을 빌린 후 석유로 부채를 상환하는 방식을 사용하는데 야수니를 60개 구역으로 쪼개어 정유사들에게 위탁한 후 개발하게 한다. 이러한 방법은 쪼개어진 구역들을 무차별적으로 파괴하고 그 지역에 사는 원주민들까지도 함부로 대할 수 있게 되는 원인을 제공한다. 과거에 에콰도르는 이미 Texaco라는 석유기업에 의해 환경파괴와 인권유린을 경험했었다. 그런데 왜 개발을 중단하다 못해 더 개발하려 할까?

아마존을 계속해서 개발하려는 현재와는 달리 에콰도르는 인간에게 인권이 있듯이 자연에도 자연권이 있음을 헌법에 명시해 놓은 국가이다. 자연권은 세계에서 볼리비아와 에콰도르만이 헌법에 명시해 놓은 것을 미루어 보아 환경 보호를 굉장히 중요한 사안에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맥락으로써 현 정부는 2007년 야수니 ITT 이니셔티브라는 아마존 보호를 위한 제안을 한 적이 있었다. 이 제안은 야수니 ITT 지역의 석유 추출을 포기하는 대신 석유로 얻을 것이라 예상되는 수익의 일부분을 세계사회가 자발적 기부로써 보전 해달라는 것이다. 이 제안은 기후변화를 늦추고 환경보호를 위한 획기적이고 모범적인 예시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제안은 목표 액수의 1%도 못 미치게 모금되었고 2013년 계획은 폐기 되었다. SDGs에서 끊임없이 강조 되고 있는 지속가능한 개발, 환경보호, 기후변화 대응, 육지 생태계 보존과 삼림 보존, 생물다양성 유지를 전 세계적으로 도외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이번 프로젝트 활동으로 아마존 개발 현장을 갔을 때 심각하게 파괴되고 있는 밀림을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개발이 진행되기 오래 전부터 살아오던 원주민들의 열악한 생활과 권익 보호를 위한 단체들의 활발한 활동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또한 단체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현재 아마존 개발의 가장 큰 문제점이 무엇이고 왜 항상 원주민들은 피해자가 되고 쫓겨나는지에 대한 답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다녀온 후에는 개인적으로도 한 단계 성장하고 남아메리카의 특수한 여러 가지 문제들 중 하나인 아마존 파괴와 원주민 불평등에 대해서도 통찰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중남미를 공부하면서 직접 남미를 방문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공부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 했고 많은 것을 경험하고 느끼고 오기 위해 사전 공부를 충분히 한 후 출국했다.

서울에서 출발하여 에콰도르 키토에 도착하는 일부터 엄청나게 고된 일이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에콰도르까지 직항노선은 없기 때문에 미국을 경유하여 가야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까지 약 13시간, 샌프란시스코에서 휴스턴까지 내려가는데 6시간, 휴스턴에서 키토까지 약 5시간이 걸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 나라들 중 한 곳이 에콰도르다. 우리는 경유지에서 다음날 비행을 위한 스탑 오버를 한번 하고 나서야 겨우 에콰도르행 비행기에 탈 수 있었다. 그래서 처음 키토에 도착 했을 때 우리는 마치 일정이 다 끝난 사람들처럼 환호했다. 진짜 일정은 도착하고 난 후 부터였다. 숙소를 알아보기만 하고 예약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호스텔에 오전 1시쯤에 도착했다. 그 곳에는 3명만이 잘 수 있는 침대가 있다 해서 나는 교수님과 함께 또 다시 택시를 타고 다른 숙소로 이동했다. 숙소를 찾기 위해 구시가지 바실리카 성당 근처의 가파른 언덕 골목을 이리저리 다녔다. 동네가 가로등 불빛과 간간히 서있는 경찰차 불빛 외에는 아무런 빛도 없었고 각각의 집들은 모두 굵은 철창과 철문으로 굳게 닫혀있었고 커튼으로 가려져 아무런 빛도 나오기 힘들어 보였다. 내가 본 남미의 첫 인상은 소문과 같이 위험하고 항상 경계해야하는 곳처럼 다가왔다.

숙소에서 약 4시간을 자고 나서 Accion ecologica에 연락하기 위해 지난밤 헤어졌던 숙소로 다시 갔다. 한국에서 연락을 몇 번 해봤지만 정확히 약속을 확답하지 않은 상태여서 아침이 되자마자 단체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스럽게도 당일 오전 11시로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우리에게는 약 세 시간의 여유시간을 활용하여 아침식사 후 여행 인포메이션 센터에 가서 키토투어 정보를 획득한 후 마침 맞은편 대통령 궁에서 사열식 행사가 있다고 해서 보러갔다. 행사는 마치 우리나라 군대의 국기게양식과 흡사한 형태로 진행 되었고 대통령이 테라스에 나와 국민들에게 인사하였다. 행사를 진행하는 동안 광장 한 귀퉁이에서는 소규모로 시위를 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제외하면 사람들의 환호성과 라파엘 코레아를 부르는 인사들로 가득 찼다. 에콰도르의 대통령 선거가 올해 2월에 있는데 코레아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까지도 인기가 있다고 생각했다. 사열식 행사는 키토의 뜨거운 땡볕에서 진행 되었고 우리는 더 지치기 전에 Accion ecologica에 가기로 했다. 이 단체는 정부의 개발정책에 반대하는 성향을 띄고 있어 일반 가정집 같은 공간에 작게 사무실을 차려놓고 업무를 보고 있었다. 인터뷰가 스페인어로 진행되는 동안 옆에서 한 단어라도 더 이해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이 단체는 현재 야수니 국립공원의 아마존 파괴 보다는 에콰도르에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안데스 산맥을 따라 진행되는 광산 개발 문제에 무게를 두고 활동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마존 파괴에 대해서도 미국 NGO단체 Amazon watch와 협력하여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코카 시에 자신과 함께 활동 중인 직원 디오첼로를 소개 시켜주었다. 그 자리에서 바로 그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디오첼로는 흔쾌히 다음날 아침 우리가 도착하는 대로 코카 터미널에 데리러 나와 하루 동안 우리가 보고자 하는 개발현장에 동행 해주겠다고 했다. 현실적인 일정계획 중 가장 이상적으로 야수니에 접근 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고 그 곳에서 일하는 중인 페르난도와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서 얘기를 나눴다. 그러던 도중 그는 자신이 코카로 가는 버스 터미널이 자기 집 근처라며 짐을 집에다 두고 잠깐 키토를 둘러보고 오라 했다. 예전부터 나는 남미가 위험 하다고하여 의심해 봐야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되는 마음에 교수님께 여쭤봤더니 교수님은 굉장히 태연하게 페르난도가 굉장히 착한 친구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페르난도의 집은 생각 보다 좋았다. 우리나라 80년대의 아파트 같았다. 집에서 그는 코카를 가기 전 그곳의 지도와 정보들을 얘기해 주었고 장기간 버스 여행에 대비해 샤워를 할 수있게 제공해 주었고 우리와 맥주를 한잔 하면서 포르투뇰을 구사하며 얘기했다. 외국에서 처음으로 맞는 호의에 깜짝 놀랬다. 페르난도의 호의 하나만으로도 에콰도르와 남미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국격을 높이는 일은 작은 호의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느꼈다. 그의 집에 짐을 두고 우리는 적도에 위치해 있는 적도 박물관에 들렀다. 그 곳은 프랑스 지질학자가 찾아낸 적도를 기념하는 공원 같았다. 공원에 중앙에는 선이 그어져 있고 이 선을 기준으로 남반구 북반구를 나누었다. 전망대에 올라가보니 키토의 시내가 조금 보였다. 적도 박물관 내에는 에콰도르 전 지역의 원주민 부족 박물관과 적도 과학관이 있었다. 원주민 박물관에는 한국에서는 절대 알아볼 수 없는 생소한 부족부터 우리가 만나보고 싶었던 와오라니 부족도 있었다. 와오라니 부족의 생활풍습, 음식문화, 의복문화 등을 사진과 글과 재현해낸 물건들이 있었다. 한국에서 조사를 할 때 그들이 당하는 피해에 대해서만 궁금해 했지 정작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고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서는 궁금해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원주민 박물관을 통해 그들에 대한 이해도를 한층 더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박물관을 방문한 후 우리는 7시간이 소요되는 키토-코카 구간 야간버스를 탑승했다.

 


 

 버스는 밤새도록 안데스 산맥을 내려와 아침 6시가 되어서야 코카에 도착했다. 아마존의 열대 우림의 덥고 습한 기후에 예상과는 다르게 해발이 약 800미터 정도로 우리나라에 비교하자면 굉장히 높은 편이라 놀랐다. 터미널에 약속대로 디오첼로 아저씨가 우리를 데리러 왔다. 차는 정말 오래되어 문을 꽉 닫지 않으면 운전 중에 문이 열리는 불상사가 생길 정도였다. 코카 시는 정말 열악한 중후진국 같은 도시였고 디오첼로는 컨테이너를 개조한 집에서 살았고 그의 부인은 앞마당 길가의 노점에서 식당을 운영했다. 디오첼로는 야수니를 위해 몇 년간 보수도 받지 않고 일했다. 우리가 탔던 차도 기름이 다 떨어져 E자를 넘어서 금방이라도 시동이 꺼질 것 같았다. 기름이 많이 나는 지역에서 석유 추출을 막는 운동을 하며 주유소에서 기름 값이 싸서 좋다고 얘기하는 것이 너무 재밌었다. 그 후 아마존의 시작점이라는 별명을 가진 나포 강을 보러 갔다. 예전에 프란시스코 데 오레야나가 아마존을 통과하여 스페인으로 가기 위해 뗏목을 만들었던 출발점이 나포 강이었다고 한다. 그의 이름을 따서 이 지역 이름도 Provincia de Orellana라고 지었다. 강물의 색은 텔레비전에서 많이 봐왔던 흙색의 폭이 넓은 강이었다. 그러나 텔레비전에서 본 감정과는 확실히 다르게 가슴 속에서 무엇인가 벅차올랐고 여전히 내가 아마존을 코앞에서 보고 있다는 것이 꿈만 같았다. 처음으로 보는 아마존 강은 한국의 오염되고 자그마한 강들에 비할 수 없을 만큼 경외심을 주었다. 지친 몸과 마음을 생전 처음 보는 큰 컵의 생과일 주스를 마시며 추스렸다. 그 후 원주민 권익 보호 단체Alejandro Labaka와 인터뷰를 하고 와오라니 부족과 접촉을 위해 방문 했다. 그들은 원주민들에게 현대의 문명이 필요한 것을 인정 하면서도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살아오던 그들의 터전에서 무력충돌이 계속 일어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개발을 하며 진행된 도로건설, 벌목, 오염의 정도가 심각하고 사람들이 질병에 걸리는 일이 잦아지고 있어 부작용이 심각하다고 주장했다. 키토에서 보다 더 가까이서 원주민들의 목소리를 듣는 단체라 그런지 말투와 표현이 더 단호했다. 인터뷰의 막바지에 교수님께서 와오라니 부족과 접촉 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 물었다. 마침 와오라니 부족의 한명인 솔로몬이라는 친구가 근처에 있고 이리로 와 우리를 만나겠다고 했다. 여기 사람들이 우리를 많이 도와주려 하고 있고 또 그게 뜻대로 잘 풀리고 있다는 것이 너무 고마웠다. 10여분을 더 얘기하다 보니 솔로몬이 왔다. 솔로몬의 생김새는 키는 160cm 쯤에 이목구비가 뚜렸 했다. 동양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었지만 묘하게 달랐다. 서글서글하게 웃는 모습이 선해보였다. 그는 동네에 방문자를 위한 움막이 있는데 그 곳에서 며칠 지내며 부족을 소개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우리는 감사의 의미로써 생필품과 식료품을 제공해 주기로 하고 그 전에 디오첼로와 함께 야수니 지역의 석유추출현장을 먼저 방문하러 갔다. 2시간을 넘게 차를 타고 들어가는 동안 끊임없이 이어져 있는 녹슨 송유관과 그것을 따라 주변으로 지어진 집들을 보았다. 집들은 녹슨 송유관을 발판으로 삼기도 하고 빨래 건조대용으로 쓰기도 했다. 그러나 녹슨 송유관은 땅 밖으로 노출 되어 언제라도 사고가 날 듯 녹이 슬어있었고 위태로울 만큼 약한 지지대에 의해서 이어져 있었다. 석유를 추출하고 있는 곳은 추출 시에 발생하는 가스를 태우기 위한 불길이 숲 사이로 솟아올랐고 석유와 함께 추출된 오염된 물은 저수지에 보관되어 강으로 배출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근처에서 물장난을 치는 아이들을 보니 아마존 개발이 자연 뿐만이 아니라 그 곳의 모든 사람들의 건강을 해치고 병들게 만드는 중 이었다. 혹시 원주민들도 석유채굴 개발에 합세하여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인가 물어봤더니 그런 사람들은 소수이고 대다수의 원주민들은 농사를 짓거나 열매를 따서 팔고 있다고 했다. 또 디오첼로가 말하기를 원주민들이 저항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교육이라고 했다. 오지에서 살고 있는 부족들의 학생들은 학교에 가기 위해 새벽 6시부터 거리에 나와서 지나가는 아무 차를 얻어 타기위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우리가 타고 갈 때마다 간절한 눈으로 태워달라고 손 흔드는 학생들을 보며 정말 안타까웠다. 결국에 차를 얻어 타지 못하면 학교까지 몇 시간이고 걸어가서 공부를 해야 한다. 그들의 삶이 더 나아지기가 얼마나 힘든지 예상이 됐다.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많은 것을 느낀 뒤 솔로몬의 부족 내에 있는 숙소에 도착했다. 온 동네 사람들이 움막 앞으로 모여 우리를 신기한 듯이 쳐다보고 아이들이 우리를 쫓아다녔다. 할머니께서 6.25전쟁 때 흑인들을 처음 본 이야기를 했던 것이 생각났다. 할머니께서는 그때 당시 눈과 이를 제외한 온몸이 거멓고 큰 흑인들이 무서워서 집 밖으로 나오지도 못했다고 하셨다. 우리 할머니처럼 그 아이들도 우리가 신기하게 보였을 것 같다. 이어 우리는 다른 와오라니 부족을 만나러 갔다. 솔로몬의 차를 타고 갔는데 도요타 트럭이었다. 부족에서 공동으로 차를 한 대 장만했는데 디오첼로의 차보다 훨씬 좋았다. 솔로몬은 가는 길에 있는 마을이 자기네 부족인지 키추아 부족인지 얘기해 주었다. 내가 키추아와 와오라니 사이의 관계는 어떠한가 물어봤더니 너와 내가 친구이듯이 모두 친구라고 했다. 생전 처음 본 사람이라 낯을 가리고 어색해 할만도 한데 순진하게 웃는 모습에 나도 친구가 생겨서 좋다고 했다. 약 30분이 걸려서 친척 부족에 도착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나이에 상관없이 아주머니들이 똑같이 생기셨다. 누가 봐도 정말 한 가족처럼 똑같이 생겨서 혼란스러울 정도였다. 이윽고 와오라니어로 환영사를 해주었고 아주머니들은 사냥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왔을 때 불러주는 노래를 불렀다. 아마 우리가 사준 식료품들은 그 어떤 사냥감 보다 풍성했을 것이다. 우리는 숙소로 돌아와 바나나 잎으로 싸서 찐 닭고기를 먹고 부족 사람들과 한국과자를 나누고 맥주를 마시며 친목을 쌓았다. 예상보다 발전된 부족사회 덕분에 별밤에 야외에서 샤워도 했고 모기장 속에서 아늑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야수니 생태 다양성을 탐구하기 위한 일정 때문에 날이 밝아오는 대로 출발을 위해 준비했다. 와오라니 부족은 이미 일어났는지 부엌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들은 보통 새벽 4시 반이면 모두 일어난다고 했다. 그래서 새벽 6시에 우리가 한창 준비하고 있을 때 조식도 무리 없이 제공 해주었다. 허겁지겁 조식을 먹고 있을 때 서너살로 보이는 아이가 움막 안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고 구경하고 있었다. 나는 들어오라 손짓했고 눈빛을 보아하니 빵을 먹고 싶은 눈이었다. 하나를 주니 맑은 눈으로 날 보며 먹었다. 목이 막힐라 음료도 주었다. 맛있게 먹는 모습이 나를 배부르게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의자에 앉아서 먹게 한 후 우리는 움막 밖에서 짐을 싸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던 중 아이가 어느새 다 먹고 나와서는 내 손을 잡았다. 그 순간이 이번 활동 중에 가장 가슴이 따뜻해지는 순간이었다. 어떠한 이해관계를 떠나서 나와 와오라니 사이에 순수한 처음이자 마지막 접촉이었다고 생각한다. 내손을 잡은 이유가 다른 어른들은 아이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그냥 내 인상이 좋아서 인지 어떻든 간에 나와 그 아이는 진심으로 통했다. 짧고 아쉬운 와오라니 부족과 하룻밤을 뒤로 한 채 우리는 야수니 국립공원에 살고 있는 수많은 종의 동, 식물들을 직접 보기 위해 출발했다. 어제는 차를 통해 남쪽 아마존을 탐방했고 오늘은 배를 타고 동쪽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힘든 일정인데도 모두가 활기가 넘쳐서 막내인 나는 더 활기가 넘쳐야 할 것 같은 부담을 느낄 정도였다. 특히 교수님께서는 나이에 맞지 않는 활력을 가지고 계셔서 놀랍고 또 고맙기도 했다. 생태 탐구부터는 디오첼로가 아닌 엑토르가 가이드를 해주었다. 엑토르는 아마존에서 가이드 경력이 33년이 되는 베테랑에다가 디스커버리, 내셔널 지오그래픽 심지어 정글의 법칙에도 출연한 경력이 있는 아마존 장인이었다. 그와 함께라고 생각하니 아마존에 들어가는 일이 전혀 두렵지가 않았다. 먼저 엑토르가 진행 중인 원숭이 재방생 프로젝트 현장을 보러 갔다.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원숭이가 살고 있는 야수니는 예전부터 동물원 사육용으로 원숭이들을 많이 포획해 갔고 몇몇 종은 멸종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잡아간 원숭이들 중에 95%이상이 적응하지 못하고 폐사했다. 엑토르는 이러한 현실에 맞서서 원숭이 종을 보전하고 동물원의 원숭이들을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섬 하나를 통째로 원숭이들이 자연으로 돌아가기 전 적응을 할 수 있게 환경을 제공 해주고 방생한 원숭이들을 일정한 간격을 두고 체크한다고 했다. 진정으로 아마존을 생각하는 장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아마존 장인과 함께 밀림으로 들어간다면 주변에 원숭이들로 바글바글 하는 것은 아닐까 앞선 걱정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원숭이들을 보러 갔을 때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독한 모기들 뿐 이었다. 엑토르가 애타게 원숭이 소리로 불러보아도 크게 반응이 없었다. 오히려 엑토르가 목으로 내는 여러 가지 소리가 더 신기했다. 그렇게 40여분을 찾아 돌아다녀서 나무위에서 놀고 있는 원숭이 가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캐리비안의 해적에서 나오는 그런 원숭이는 여기에 없음을 깨달았고 내가 진짜 야생 원숭이를 보고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원숭이 후에도 여러 가지 새, 악어, 또 다른 종의 원숭이들, 아르마딜로의 숨소리 발자국 흔적 등으로 생명이 여기 어딘가에 살고 있음은 볼 수 있었지만 그 어느 것도 쉽게 볼 수 있는 동물들이 아니었다. 야생 동물을 쉽게 볼 수 있었다면 오히려 사육된 동물들을 보기 위해 아마존 환경을 갖춘 동물원에 방문한 듯한 분위기에 더 씁쓸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여하튼 생태탐구를 미적지근하게 끝내고 난 후 배를 타고 식사를 하러 가는 중에 엑토르에게 우리 팀이 아마존에 온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자 엑토르는 이곳에는 석유 개발뿐만 아니라 플랜테이션 농장으로 인해서도 많은 파괴가 되었다고 말하며 원한다면 가서 볼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휴식시간을 아껴 Palma africana 플랜테이션 농장으로 갔다. 끝도 없이 펼쳐진 같은 나무는 일정한 간격으로 수천 마일에 걸쳐 재배되는 중이었다. 흔히 팜유라고 알려져 있는 이 열매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식용유의 원료다. 이 나무는 주변의 토양에서 모든 양분을 빨아들이며 자라기 때문에 이 농장 근처에서 다른 종의 식물이 자라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재배를 위해서는 열대우림 전체를 불태우는 것이 불가피 하다. 또 부족한 성분은 거름과 농약을 통해서 보충되어 이후 토양의 황폐화를 야기한다. 이러한 플랜테이션 농장 또한 야수니 지역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큰 원인 중에 하나이다.

아마존을 나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전망대에 올랐다. 옆에 큰 나무를 끼고 오르는 전망대는 최소 30m는 되어 보였다. 아마존의 나무들은 죄다 키가 커서 한참을 올라가야만 비로소 전망을 볼 수 가있었다. 전망대에 오르고 나니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장관이 펼쳐졌다. 빽빽한 열대 우림들은 우리가 육안으로 보기는 정말 힘들었던 원숭이, 새들의 소리로 시끄러웠고 숲으로부터 하늘로 올라가는 수백개의 수증기는 rio voador이라 불리는 하늘 위를 나는 강을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전망대 위에서는 과연 지구의 허파다운 위용에 모든 사람이 자연에 압도 되는 분위기를 느꼈다. 그 후 우리 팀은 지친 몸을 이끌고 키토로 돌아 가는 중에 흔히 남미타임이라 불리는 이곳에서는 일상적인 지연과 군인의 불시검문을 겪은 후 키토로 돌아왔다. 이미 지연된 시간으로 인해 일정에 휴식이 사라진 우리는 한국에서 푹 쉬기를 기약하며 지친 몸을 이끌고 한국으로 귀국함으로써 일정을 끝마쳤다.

이번 프로젝트는 비록 짧은 일정이었지만 나에게 있어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큰 의미와 교훈을 주었다. 또한 포르투갈어를 전공하며 중남미 비즈니스를 연계 전공하는 학생으로서 남미를 공부하면 할수록 호기심과 궁금증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었기에 느낌과 여운은 남들에 비해 더 크게 남았다. 또한 교수님과 함께 일정을 진행하며 강의실에서 보다 더 많고 뜻 깊은 가르침을 주셨다. 교수님의 도움 없이는 절대 경험 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이번 프로젝트에서 해낼 수 있게 해주셨다. 교수님과 함께 지냈던 10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을 꼽는다면 단연코 아마존에서 Palma africana 플랜테이션 농장을 가는 길이었다. 따가운 햇살이 비추는 트럭의 뒷 트렁크에 교수님과 형들과 함께 앉아서 포장되지 않은 길을 갈 때다. 위에서는 선크림도 뚫을 기세의 따가운 햇살에 아래에서는 비포장도로의 울퉁불퉁함을 온몸으로 느끼며 교수님께서 연구 하셨던 야수니에 대한 얘기, 아마존 파괴에 대한 얘기, 자신의 인생 속에서의 중남미에 대한 얘기를 해주셨다. 강의실에서 들었다면 수업 같았겠지만 트렁크에서는 아니었다. 그 얘기는 교수님께서 살아 온 인생의 이야기이자 연구자로서의 열정을 전염시키는 얘기였을 뿐만 아니라 중남미를 공부하는 후배들을 위한 지식이었다. 내가 할 수 없는 아마존 파괴에 대한 통찰을 해주셨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 비포장도로가 계속되어 얘기도 계속 듣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가장 큰 의미를 부여해주고 살면서 해야만 하는 일을 생각하게 해주는 순간은 따로 있었다.

와오라니 부족의 전통 움막에서 하루를 지냈던 날 아침 한 아이와 손을 잡았을 때다. 이미 개발되어 자본주의에 적응해서 살아가는 와오라니 부족들에게서 하루 잠깐 묵었다 가는 우리는 그저 돈 나오는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받아와서 씁쓸한 마음으로 돌아가려는 순간에 그 아이의 순수한 친밀감의 표현은 내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손을 잡기 전에는 개발이 진행되는 오지 아마존에서 열악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구나 그리고 열악한 환경에서도 그들 나름대로 다 살아가는 방법이 있구나 정도의 생각에서 그쳤었다. 그러나 손을 잡고 나서 이 아이를 보니 이 아이 또한 어른들이 살아온 것과 별반 다를 바 없이 한참을 걸어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고, 오염된 강가에서 수영을 하고, 어린나이에 아이를 가져 자신의 꿈을 포기한 채 살고, 돈을 벌기위해 관광객들이 올 때마다 옷을 벗고 전통의상으로 그들 앞에서 춤과 노래를 추며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하니 진심으로 걱정 되었고 마음이 아팠다. 그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정해진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야 하는 운명이 너무 불공평하고 또 내게 그 아이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 것이 속상했다. 그 순간 나는 살면서 꼭 열악한 환경에 방치된 어린 아이들의 교육과 미래를 위한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 일이 이번 활동 중에 가장 값진 경험이었고 내 인생 중 하나의 지표가 되었다. 많은 것을 느끼도록 해주신 가족, 우리 학교와 중남미학부, 중남미지역원, 이태혁 교수님, 윤하 형, 동욱이 형, 고은이 누나에게 너무 큰 감사함을 느낀다.

 

 

 

 

 

이전/다음 목록표
다음글 제 1기 해외문화탐방 CROSS-BORDER 프로그램 활동 보고서 <아마존 通하다 - 김 윤하>
아전글 이전 게시물이 없습니다.

Quick Menu

TOP 열기/닫기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