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Tech & Beyond 제11호(2014년3월) 빌라 로부스, 브라질의 안익태
작성자 : 라키스 작성일 : 2014-04-01 13:15:49 조회수 : 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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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H & BRAZILIAN CLASSIC

VILLA-LOBOS, 브라질의 안익태

 

임두빈 부산외대 HK교수  |  2014.03.24

 

▲브라질 바라만사 오케스트라의 연말공연(2012)
요즘 TV에서 종종 우리의 전통소리가 결합된 광고를 접하게 된다. 첨단 정보통신(IT) 관련 광고에 어우러지는 전통가락과 옛 말투는 왠지 생뚱맞다는 거리감과 함께 재미있다는 묘한 어울림을 자아낸다. 단 이런 느낌은 우리나라 사람들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현대사회는 글로벌화 되었다고 획일화 시킬 수 있겠지만 실상은 보편성 측면과 로컬의 개별성이 서로 구분되기도 하고 융합되는 조화로움을 안고 있다.
지구 저편 넘어 위치한 라틴아메리카는 대부분이 이베리아 반도의 스페인, 포르투갈 식민 지배 아래 원주민과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끌려온 흑인들의 문화가 어우러져 재창조된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흔히 서구인의 잣대로 그어 놓은 ‘문명과 야만’이란 이분법으로 구분할 수 없는 특별한 ‘섞임’을 지니고 있다.

 


라틴아메리카, 전통에 얽매이지 않는 다양성
서구 문명이 ‘전통’이라는 기준으로 ‘보수’와 ‘진보’가 경합하는 사회라면 라틴아메리카는 그다지 특정한 ‘전통’에 옭매이지 않으면서 고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정제되지 않아 다소 거친 재질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생고무공’ 같은 특성을 각종 예술 장르에서 보여 준다.


그 가운데에서 라틴아메리카의 음악, 즉 ‘라틴음악’의 특징은 인종 융합을 바탕으로 한 리듬의 다양성에 있다. 라틴아메리카로 유입된 이베리아 반도나 노예로 들어온 아프리카의 음악세계가 복잡한 리듬을 지닌 전통을 구비하고 있는 데다 원주민들의 소리와 섞이면서 소박한 아름다움까지 갖추게 되었다. 게다가 각종 장르의 정형성에 묶이지 않고 각종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하고도 자유로운 음악의 창조성을 보여 준다.


이렇게 다양성의 융합을 바탕으로 한 라틴아메리카의 음악세계는 룸바, 메렝게, 살사, 탱고, 삼바와 같이 대부분 춤과 함께하는 음악이라는 특징을 공통으로 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보통 라틴아메리카와 ‘클래식 음악’을 별개의 세계로 받아들이기 쉽다. 실제로 스페인어나 포르투갈어로 클래식 음악은 ‘musica erudita’, 즉 ‘기득권층의 음악’으로 정의된다.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조차도 ‘춤’이라는 동작이 결부된 클래식 음악은 생소하다고 여긴다. 클래식 음악이 자신을 지배하던 유럽세계를 대표하는 음악으로서 라틴아메리카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나타낼 수 없다고 여기는 게 당연할 것이다. 라틴아메리카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고민한다는 얘기는 그만큼 유럽세계에 대한 콤플렉스 역시 있다는 얘기도 된다.


브라질풍의 바흐, 작곡가 빌라로부스 

HEITOR VILLA-LOBOS(1887~1959)

 

 

1500년에 그 존재가 유럽에 알려지면서 300년 이상을 식민통치의 역사를 지닌 브라질. 축구의 종가는 잉글랜드지만 축구로 가장 유명한 나라가 브라질이듯 유럽인들의 독점물로 여겨지던 고전음악을 장르 간 경계를 넘나드는 라틴아메리카의 특징과 가장 브라질다운 음악기법을 밀접하게 연결시킨 한 음악가가 있었다. 바로 에이토르 빌라로부스(Heitor Villa-Lobos, 1887~1959)이다. 우리나라 음악 애호가들에게 잘 알려져 있고 핀란드의 음악학자 에로 타라스티가 ‘블랙박스’라며 극찬한 ‘브라질풍의 바흐 제5번(Bachianas brasileiras no. 5)’의 작곡자이기도 하다.

 


이 곡은 브라질을 넘어 전 세계와 우리나라 고전음악 애호가들에게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곡이지만 사실상 2000곡 이상의 수많은 작품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브라질의 자연과 풍습, 유럽인, 원주민, 아프리카인과 혼혈문화를 가장 브라질다운 기법으로 융합해 내면서 서양음악과 원활한 소통을 끌어낸 그는 유럽 고전음악의 전통과 조국 브라질의 음악 사이에 존재하는 공통점을 찾는 독특한 통찰력과 타고난 재능을 소유하고 있었다. 예술이라는 것이 항상 삶과 직결되어 있듯 장르를 뛰어넘어 다양한 음악을 창조해 내는 빌라로부스의 재능은 그가 영위하던 시대와 삶 속에서 태어난 것이다.


라틴아메리카 최대의 작곡가로 추앙받는 빌라로부스는 1887년 3월 5일 브라질의 고도(古都)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태어났다. 아마추어였지만 음악 소양이 깊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린 시절에 이미 클라리넷과 첼로를 마스터했다고 한다. 피아노를 비롯해 각종 현악기, 특히 기타 연주에도 능했다. 기타는 당시 인식으로 사회 지위가 낮은 계층의 악기로 여긴 부모의 반대에 부닥쳐 몰래 독학으로 배웠다고 한다. 특히 그의 모친은 아들이 음악의 길이 아닌 의대 입학을 원해 기타뿐만 아니라 음악 공부 자체를 금했기 때문에 가출까지 감행했다. 역시 위인은 역경 속에서 성장하는 모양이다.


클래식과 쇼류의 절묘한 조합
그가 주로 기타로 연주한 음악은 포르투갈이 지닌 유럽의 선율, 남미 원주민들의 고유한 음률,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원시의 리듬이 골고루 잘 융합된 ‘쇼루’(choro)였다.
그에게 클래식과 ‘쇼루’ 같은 대중음악은 똑같은 ‘음악’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우리나라에서도 오히려 클래식기타 연습곡으로 잘 알려진 음악가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7080 통기타 세대에게 친숙한 ‘세고비아’의 부탁으로 탄생된 곡이 바로 ‘12개의 연습곡(doze etude)’으로, 오늘날 클래식기타 연주의 교범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쇼루’로부터 영감을 얻은 빌라로부스는 18세에서 26세까지 브라질 음악의 원류를 찾아 브라질 각 지방과 아마존 강 유역을 여행하면서 그가 나아갈 음악세계의 방향을 정립했다. 당시에 작곡한 곡이 교향시인 ‘아마조나스(Amazonas)’와 ‘우이라푸루(Uirapuru)’이다.
음악여행에서 돌아온 시기가 바로 브라질 모더니즘 운동을 상징하는 ‘근대문예주간’이 열린 1922년이었다. 과거와의 단절이 아니라 분절을 지향하는 ‘근대문예주간’은 브라질의 근대성을 ‘식인주의’로 설명했다. 이 ‘식인주의’는 상대의 것을 먹어 그 정신까지 내 것으로 만든다는 발상으로, 빌라로부스가 추종하던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음악관과도 연결된다.


파리에서 ‘브라질음악’의 우수성 소개
이후 그는 프랑스 파리 생활에서 현대음악의 새로운 흐름을 익히고 유럽 무대에 유럽 작곡가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그만의 독특함으로 호평을 받았다. 그 호평의 이면에는 유럽세계가 갖지도 경험하지도 못하는 브라질이라는 ‘로컬’과 그만이 지닌 ‘콘텐츠’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1930년 브라질로 돌아온 빌라로부스는 교육자로 활동하면서 ‘브라질풍의 바흐’ 시리즈를 작곡(1930~1945년)하게 되는데 이 곡은 그가 깊이 존경해 오던 바흐의 대위법 음악을 활기찬 브라질 민요 선율과 함께 짜서 엮은 다성 음악에 속한 것이었다. 빌라로부스는 바흐를 ‘세계 그 어떤 민속음악과도 잘 어우러질 수 있는 풍부하고 깊이 있는 음악의 원천’으로 여기면서 바흐의 음악이야말로 지구상의 음악 토양에 자양분을 제공하는 태양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뛰어난 대위법 작곡 기술로 다성 양식을 완성하고 평균율을 채용하여 근대음악 발달의 바탕을 이룬 바흐의 음악은 그야말로 빌라로부스뿐만 아니라 당시 고전음악의 볼모지인 라틴아메리카의 음악가들에게 하나의 지향점이 되었으리라 짐작된다. 흔히 오늘날에도 이 세상에 알려진 음악 가운데 그 어느 누구에게도 싫증을 못 느끼게 하는 음악을 꼽으라 한다면 바로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를 드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이러한 사실관계를 옹호할 수 있으리라 본다. 실제로 아직 피아노라는 악기가 발명되지 않은 시대에 바흐가 개발한 ‘인벤션’은 ‘푸가’로 발전하기 직전의 단계로, 간단하고 짧은 주제를 변환시키는 가운데 음악이 저절로 발명된다는 의미를 띤다.

 

지난해 6월 브라질 대 잉글랜드 친선 축구시합

 

브라질풍의 바흐 5번곡 가장 유명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는 ‘브라질풍의 바흐’에서 5번째 곡은 가장 매력을 끌면서도 독특한 클래식 음악 작품으로 팬들에게 기억된다. 이 곡은 8대의 첼로와 한 명의 소프라노를 위한 곡으로, 한 명의 소프라노를 감싼 8대의 첼로가 합주하는 모습은 빌라로부스가 지향한 바흐의 음악치고 훨씬 자유로운 느낌을 전해 준다. 이는 바흐의 음악과 브라질이라는 ‘로컬’의 묘한 배합이 전해 주는 감성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브라질풍의 바흐’ 제5번은 바흐 음악의 특징에 존재하는 모방을 통한 창조성과 건반 악기 음악 성향이 빌라로부스와 연결된 대표 명곡으로 손꼽힌다. 음악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 곡은 어디선가 한 번 들어본 것 같지만 정확하게 제목을 기억해 내기 어려운 분위기를 전달한다. 오죽하면 ‘블랙박스’라는 별명을 얻고 있겠는가. 이 곡이 그만큼 형언하기 어려운 매력을 지녔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는 1944년부터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1947년에 이 곡을 소프라노와 기타를 위해 편곡하기도 했다. 브라질 출신으로서 전 세계로 잘 알려진 위대한 고전 음악가를 꼽으라면 빌라로부스 외에 1895년에 파리음악원 원장을 맡았고 브라질 국민 오페라 ‘과라니(Gurani)’를 작곡한 안토니우 카를루스 고메스(Antonio Carlos Gomes, 1836~1896)를 들 수 있다. 하지만 대중음악과 민속음악으로 받은 세례를 바탕으로 ‘클래식 음악’이라는 공통 언어를 통해 가장 ‘브라질다운’ 곡을 탄생시킨 빌라로부스는 가히 브라질 음악 그 자체로 불릴 만하다.


brasil@korea.com


<본 기사는 머니투데이 TECH&beyond 제11호(2014년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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