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이중적 화폐 경제의 맛을 보다
작성자 : Latin America 작성일 : 2017-03-10 09:48:21 조회수 : 41
국가 : 쿠바


박종욱(부산외국어대학교 중남미지역원 HK연구교수)


 쿠바의 화폐는 이중적이다. 이중적인 화폐의 쓰임은 쿠바 경제가 얼마나 이중적일 수밖에 없는 가, 그 한계 상황을 대변하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지표가 쿠바의 경제와 혁명의 성과까지 가름하는 외부의 시선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여러 척도 가운데 드러난 극히 일부로 전체를 간파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중 화폐 제도는 외부인들, 특히 관광객들에게 드러나는 쿠바의 극단적인 얼굴인 것은 분명하다.

 많은 관광서적이나 인터넷 블로그에서도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있듯, 필자 또한 쿠바 여행을 위해 사전에 캐나다 달러를 준비하였다. 일전에 유럽을 여행하면서 조금 남겨두었던, 유로화가 있었으나, 쿠바의 실물 경제의 위력을 체감할 수 없었던 필자로서는 여유분을 챙길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유럽을 제외하고는 미국 달러가 특별한 문제가 없이 통용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쿠바에서는 미국 달러에 10%의 페널티가 붙으며, 결국 10%의 평가절하 효과가 있기 때문에 미국 관광객들조차 캐나다 달러나 유로로 환전을 하는 것은 대세이다.미국 달러보다는 멕시코 페소가 오히려 힘이 있으며, 통용성이 더욱 활발하다는 실정은 미국의 자존심을 향한 상징적인 도전이다.

‘미국 앞마당의 작은 섬나라 쿠바는 1962년 미사일 위기 이후 여전히 미국의 신경을 자극하고 있다. 일방적인 경제 봉쇄가 쿠바의 경제를 극도로 위축시킬 뿐 아니라, 국가 기간산업의 구조까지 변화시키는 것을 감안한다면, 쿠바의 태도는 안쓰러운 몸부림이다. 외환은 필요해도, 그 우선 대상은 미국의 달러가 아니라는 전략적 연출인 것이다. 쿠바는 신발 속의 돌처럼 미국의 입장에서는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하지만, 그뿐이다.

문제는 경쟁력이 있는 외환으로 환전을 했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쿠바는 인민화폐인 CUP(Peso Cubano 혹은 Moneda Nacional)을 기본적으로 사용하지만, 대외 통상화폐를 위해 외국인전용화폐인 CUC(Peso Cubano Convertible)을 사용한다. 외국인들이 캐나다 달러를 갖고 있던, 유로를 갖고 있던 일단 국영 환전소인 CADECA에서 CUC이나 CUP으로 환전을 해야만 한다. 생각보다 외국환을 직접 교환하는 가게나 상점이 드물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 1CUC이 1미국 달러이지만, 실질적으로 미국 달러에 10%의 페널티가 붙는 것을 감안한다면, 1CUC은 1.1US $ 정도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1CUP은 쿠바 경제의 정도에 따라 유동적이다. 2010년 현재 1CUC은 24CUP 정도이다.

 

 쿠바에 도착한 관광객의 입장에서는 CUC과 CUP의 환전 비율을 생각하면서, 고민에 빠진다. 외국인 전용 화폐인 CUC을 주로 바꿔야 하지만, 거리 군것질이나 가벼운 식음료 및 대중식당에서는 CUP을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냥 바꾸면 되지, 뭐가 문제냐고? 1CUC이 24CUP이라는 현실을 체감할 수만 있다면, 누구든 고민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CUC과 CUP의 구분은 경험하기 전까지는 그저 숫자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실물경제의 맛을 보면 어떨까. 아바나의 거리에는 많은 가게들이 있다. 편의점이나, 대형마트까지 있는 것을 확인하면,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상식으로 짐작했던 쿠바의 실물경제에 대한 정보가 정확한 것은 아니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아무튼, 이글을 읽은 독자께서 무더위를 식힐 아이스크림을 한 개 먹는다 생각해보자. CUC이 통용되는 한가하고 상대적으로 ‘럭셔리’한 가게에서는 대부분 1CUC을 지불해야 한다. 1250원 가량이다. 결코 싸지 않은 가격이다. 이번에는 CUP이 사용되는 가게에 들려보자. 일단, 줄을 서야 될 것이다. 상점의 유명도에 따른 것이 아니라, 그냥 주문을 하기 위해 줄을 서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당신은 사회주의 국가에 와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짧게는 5분에서 길게는 20분가량 줄을 서 있다가, 소프트아이스크림을 주문하면서 1CUP을 지불한다. 우리 돈으로 약 50원정도이다. 필자는 운이 좋아서, 5분가량을 기다렸다가 1200원 가량을 절약했다. 절약된 금액보다는 이원화된 화폐제도에 따른 실물경제를 실감했다는 사실이 더욱 기뻤다. 아니, 그 반대였을까. 아바나 거리를 걷다보면, 고색창연한 식민시대의 건물들 모퉁이 가게마다 길게 늘어서있는 줄을 쉽게 발견하게 된다. 줄의 맨 뒤에 있던 아가씨에게 물어봤더니 치즈피자를 사려는 줄인데,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란다. 해서, 줄의 대열에 합류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제법 길어져서, 15분가량을 서있어야 했다.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모짜렐라 치즈는 아니었지만, 진하고 고소한 향의 치즈가 듬뿍 든 피자를 역시 50원에 구입하였다. 아무래도 열대지방이라서 그랬는지, 간이 조금 짜게 느껴졌다. 맛있게 피자를 먹어치운 뒤, 시력은 시원찮아도, 필요한 것은 찾아내는 두 눈으로 줄이 늘어서있는 식료품 가게를 탐색했다. 빙고. 이번에도 멀지 않은 곳에서 식료품 가게를 찾았고, 인민화폐로 생수를 살 수 있었다. 물론, 필자처럼 줄을 서지 않고, 넓은 매장에서 편안하게 물건을 고르는 쇼핑을 하고 싶다면, CUC을 사용하는 매장을 들어가면 그뿐이다. CUC을 위주로 관광을 한다면, 쿠바는 결코 물가가 싼 관광지는 아니다. 하지만, 적절하게 CUC과 CUP을 사용한다면, 쿠바의 물가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필자가 체감했던 이중화폐제도는 쿠바인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이었으며, 관광업에 종사하면서 외국환이나 CUC으로 팁을 받을 수 있는 쿠바인들은 일반 노동자들에 비해 훨씬 높은 수입을 얻을 기회를 갖게 되고, 그렇게 모은 CUC으로 외국산 TV나 가전제품을 구입하게 된다. 하지만, 시장경제에 노출되지 않은 대부분의 쿠바인들에게 CUC이 통용되는 화려한 상점의 물건들은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국영커피숍에서 50원으로 마시는 쿠바 에스프레소 커피의 맛은 저렴함이라는 매력이외에도, 현지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바에 기대어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나누었던 사소한 담소의 기회까지 덤으로 얻게 해 주었다. 모두 남자들인 종업원들은 10여개의 커피 잔 세트만으로 서빙을 하고 있다. 열 명이 커피를 마시면, 다른 사람들은 그냥 기다리면 된다. 그렇다고, 뒷사람들 눈치를 보면서 뜨거운 커피를 원샷에 털어넣지는 않는다. 약간의 여유, 그리고 조금씩의 배려는 10여개의 잔 세트보다 두 배는 많은 손님들이 불쾌하지 않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준다. 필자에게는 흥겨운 추억이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아무렇지도 않게 팔꿈치를 스치며 바에 기대어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생각보다 낭만적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열흘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사용할 요량으로 환전했던 CUP의 액수가 실제 거리에서 사용하기에는 너무도 큰 액수였다는 점이었다. 2만원가량은 충분히 사용하게 될 것으로 예상했던 CUP의 사용은 열흘이 되어도 줄지 않았고, 결국 CADECA에서 다시 캐나다 달러로 환전을 해야만 했다. 인민화폐와 외국인 전용 화폐의 이중화폐 제도는 계산기를 통해 숙지했던 필자의 생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이중 화폐의 쿠바는 쿠바 경제가 지닌 두 얼굴에 대한 실증적이고, 흥미로웠던 체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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