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하지 마시오, 저항은 당신들의 권리입니다"-멕시코의 철학자 루이스 비요로
작성자 : Latin America 작성일 : 2017-03-07 16:17:38 조회수 : 137
국가 : 멕시코


 

장혜영 (부산외대 스페인어과 외래교수)

  

  Foto 1.jpg : 사파티스타 민족 해방군의 부사령관 마르코스와 그들을 뒷받침한 철학자로 유명했던 루이스 비요로. 그가 지난 3 월 그들의 추모 속에 영면했다. © Moyses Zúniga / Cuartoscuro

  ‘라틴’ ’아메리카’. 로마 제국의 문화와 언어를 뜻하던 ‘라틴’ 과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이름에서 딴 ‘아메리카‘를 합친 이름. 철저하게 그 땅을 정복했던 사람들의 문화와 이름에 바탕을 둔 명칭이다. 이 이름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그 땅의 지식인들은 언제나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 고유의 문화와 사상은 무엇인가” 하는 자기 정체성의 딜레마에 시달려왔다. 쿠바의 대표적인 지성 페르난데스 레타마르는 어느날 유럽인 기자로부터 “라틴아메리카 문화라는 게 존재합니까?” 라는 질문을 받았다. 순간 그는 그 기자가 “당신들은 과연 존재하는 겁니까?” 라고 묻는 것처럼 들렸다고 한다. 고유의 문화와 사상이 없다면 우리 스스로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일터, 일부 지식인들은 아예 ‘우리는 서양 문화의 한 부분이지 않느냐’ 하며 그냥 유럽 문화의 사생아임을 받아들이자 하기도 했다. 그러나 팬아메리카 주의를 내세우며 아메리카 대륙으로의 헤게모니를 정당화하려는 미국에 대항해 라틴아메리카가 더 이상 서구에 종속된 땅이 아닌 자립된 문화권임을 증명해야 되는 20 세기에 들어서자 ‘우리 스스로의 문화’을 찾기 위한 노력들이 점차 시작되었다. 대표적인 경우로 ‘혼혈 멕시코’ 론을 내세운 호세 바스콘셀로스의 ‘우주적 인종(La raza cósmica)(1925) 같은 저서를 들 수 있겠다. 그러나 바스콘셀로스의 혼혈 인종 찬양은 철저하게 서구 중심적인 이론에 바탕하고 있을 뿐 아니라 동양인과 아프리카 계 인종에 대한 편견을 서슴없이 드러내고 있으며 또 혼혈을 이루지 않은 원주민들을 소외시키는 등 오히려 인종 차별적인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페루의 호세 카를로스 마리아테기 등 라틴아메리카 사상계의 한 축을 이루는 마르크스주의자들 역시 비록 토착의 문제들을 어느 정도 언급을 하고 있다고는 하나 유럽사에 기초한 이론인 마르크스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시나 새로운 철학이 아니라는 평을 듣고 있다. 엔리케 두셀로 대표되는 해방 철학자들도 헤겔의 이론 등 그 바탕은 서양 철학에 두고 있다. 일각에서는 원주민 문명의 문화와 세계관이 우리 고유의 문화라 주장하지만 정복 이후 스페인의 문화-역사적 영향력을 배제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중남미인 스스로 원주민들을 경시하고 있는 마당에 9월 독립의 달에만 원주민 옷을 입고 아스텍의 춤을 춘다고 해서 그 문화가 우리 모든 것을 대표한다 할 수도 없다. 그럼 도대체 우리는 누구인가? 멕시코, 혹은 페루, 혹은 아르헨티나라는 한 단위의 나라 안에서 우리가 내세우고 우리가 후대에게 물려줄 ‘국민 문화(Cultura nacional)’란 과연 무엇이 되어야 한단 말인가?

  

  Foto 2.jpg : 위대한 혼혈 멕시코를 내세운 호세 바스콘셀로스의 원대한 구상이 담겨 있는 SEP 건물의 부조물. 그러나 부처의 인도 철학까지 포용한 듯 보이는 이 사상은 철저하게 유럽 중심적 개념 위에 구축된 것이었다.

  루이스 비요로는 바르셀로나에서 멕시코인 부부 사이에서 태어나 프랑스와 독일에서 공부한 후 멕시코 최고 명문인 국립 자치 대학(UNAM)에서 철학 박사가 되었다. 멕시코 철학에 대해 고민하는 히페리온 그룹의 멤버였으며 또한 멕시코 철학 협회장을 지내고 유네스코의 멕시코 대사로 임명된, 전형적인 엘리트 철학자이자 역사가였다. 그 역시도 후설의 현상학과 비트겐슈타인의 분석 철학에 영향을 받은 서양 철학의 전문가였지만, 그런 그가 원주민 문화의 옹호자이자 멕시코적인 사상의 주창자로 알려지게 된 것은 그는 다양성과 소통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이 가장 멕시코적인 문화이자 철학이라고 주장해 왔기 때문이다. 그는 서양 철학이 엘리트들의 지배 논리를 정당화하는 이론의 구축에 중점이 되어왔다는 점에 주목했다. 서양 문화 역시 이론적으로 뛰어난 문화를 주창하고 문명이 야만을 지배할 수 있다는 식의 문화적 우월주의를 이론화 해왔던 점도 지적했다. 그에 반해 다양한 문화가 혼재되어 있는 다양성의 대륙인 라틴아메리카에서 철학이란 이러한 이론의 철학이 아닌 다양한 문화와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 간의 소통을 가능케 하는 소통의 언어와 문화를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또한 비요로는 말한다. 왜 국민 문화가 단 하나의 모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문화’란 한 사회를 이루는 물질적-비물질적인 모든 다양한 것들의 총합을 의미하며 국민 문화는 그 나라 현실의 반영이자 요약과도 같은데 현실이란 항상 복합적이다. 라틴 아메리카의 경우 더더욱 복합적이고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단일한 하나의 국민 문화를 내세우겠다는 것은 결국 소수가 다수에게 그것이 국민 문화라 우기는 양태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라틴아메리카의 다양성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야 말로 우리 고유의 정통 문화라는 게 비요로의 문화론의 요지였던 셈이었다.

  

  Foto 3.jpg : 비요로의 작품집 <이데올로기의 개념>. 정확한 정의도 없이 남발되고 있는 ‘이데올로기’ 란 단어를 다각적으로 분석하면서 개념과 이론 이전에 존재와 삶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비요로는 좌파 지식인이자 원주민 공동체 운동의 옹호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가 1994년 1월 1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발효에 맞춰 봉기한 사파티스타 민족 해방군(EZLN)의 활동을 지지했던 것은 역사적으로 구체적인 주민들인 치아파스 농민들이 강요된 체제인 국가와 어떻게 싸워서 어떻게 합의점을 찾아낼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치아파스 농민들은 역사적으로 긴 세월을 그 땅에 살아온 구체적인 실제 인물들이다. 그들에게 멕시코라는 ‘국가’ 는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강요된 현실이다. 현실이 그러하니 그저 국가에 복종하라 하는 것은 지배 논리를 내세운 강요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치아파스 농민들의 저항은 정당한 것이며 오히려 소통을 위한 노력에 가깝다. ‘국가’라는 강요된 현실과 원주민 공동체의 이상 사이에서 합의점이 필요한데 기존의 대의 민주주의 방식으로는 원주민 등 너무나 다양한 라틴아메리카의 구성원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반영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사파티스타 운동과 같은 사회적 저항은 진정한 국민 국가로 가는데 꼭 필요한 것이며, 진정한 ‘국민’을 만들어낼 수 있는 과정이 될 것이라 보았다. 그리고 그러한 사회적 저항의 결과로서 다양한 문화 공동체들이 존중된다면 그야말로 그것이 바로 유토피아, ‘모두를 위한 국가’ 가 될 것이라 믿었다. 한때 전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던 사파티스타들의 독특한 투쟁 방법, 자신들의 주장을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로 직접 전달하여 여론을 끄는 방법이나 기존의 모든 고착화된 이념을 거부하고 소외된 모든 이들과의 연대를 강조하며 공동체주의에 근거해 다수의 집단 지도 체제를 갖는 것 등이 비요로의 이론적 뒷받침과 영향 속에 형성되었다.

  급진적인 정치 그룹들은 사파티스타들도 비요로도 결국 원주민의 현실을 바꾸지 못했다며 그들의 활동을 비난하기도 했다. 사실 비요로는 그의 저서 <권력과 가치(1997)> 등을 통해 지배 논리의 언어들을 집요하게 연구해온 천생 학자이자 연구자였다. 그리고 그 끝없는 연구를 통해서 멕시코라는 나라가 생기기 이전부터 형성되어 온 원주민들의 ‘공동체적 민주주의’가 허위적인 단어들로 수식된 ‘공화국 민주주의’보다 오히려 더 선행한다는 점을 증명했다. 원주민 공동체의 저항과 요구는 그 땅을 살아온 사람들의 정당한 권리이고, 국가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할 의무가 있음을 철학적 작업을 통해 주장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다소의 비판도 존재하기는 하지만 ‘저항하는 율리시즈’, ‘휴머니스트’, ‘진정한 좌파 지식인’ 등의 수식어와 더불어 사파티스타들을 포함한 많은 이들의 진정 어린 추모를 받은 비요로가 평생에 걸쳐 진행한 철학적 작업들은 더 나은 멕시코, 모두를 위한 멕시코를 건설하는 데 작아 보이나 사실은 큰 역할을 해주었다 할 수 있겠다. 91세로 세상을 떠난 루이스 비요로 토란소 (Luis Villoro Toranzo, 1922-2014) 박사를 추모하며.

  

 

  Foto 4.jpg : 2012 년 12월 미초아칸 대학교에서 원주민들의 옹호자로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을 때의 비요로 © La Jorn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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