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Latin America 작성일 : 2017-03-07 16:13:43 조회수 : 1,631
국가 : 아르헨티나


 

박호진(前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HK연구교수)

  

아르헨티나의 작가 보르헤스의 시집에는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대중에게 알려지지 못한 체 잊혀 버린 이름 모를 시인에 바치는 시가 있다.

 


노년의 보르헤스

  

그대가 이 땅에 살았을 때,
그대가 인생의 苦樂으로 온 누리를 누비던 시절의
기억은 어디 있는가?

끊임없는 세월의 흐름이 그 모든 것을 녹여버리고,
그대는 이제 어느 이름 모를 책 목차의 한 줄의 기록으로 남아 버렸네.

운명은 다른 작가들에게 숱한 영광과, 멋진 비문, 심지어는 동전에 새겨지는 영광과 기념비, 빼어난 전기 작가들을 선사했지만,
오! 어둠속의 친구여, 우리는 단지 그대에 대해
그대가 어느 날 오후 꾀꼬리 소리를 들었으리라는 것만 알고 있네.

그대는 그늘 속에 핀 수선화 사이에서
신이 불공평했노라고 생각하겠지.

그러나 세월이라는 것은 초라하고 하찮은 맺고 엮임이지 않는가?
그리고 망각 속에 사라지는 散華되어 버린 災보다 나은 운명이 있는가?

신은 다른 이들에게 피할 수 없는 영광의 빛을 보내어
그들의 내장을 들춰다 보게 하고, 그 영광의 틈바구니에서
사랑받던 장미는 결국 상처를 받고 마네.
그러니, 친구여, 신이 그대에게 더 자비로웠던 셈 이네.

적어도 그대는 아직 밤이 아닌 어느 늦은 오후 절정의 시간에
테오크리토스의 꾀꼬리 소리를 듣고 있지 않는가?

  이 시는 보르헤스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후에 쓴 시로 명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으며 자신도 세월이 가면 어느 무명 시인처럼 잊힐 것을 예견하며 쓴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에서 보르헤스는 아직 잊혀지지 않고 있다. 물론 한국에서 중남미 문학에 대한 인기는 과거 1980년대, 90년대에 비하면 보잘 것 없어 보인다. 2010년 페루의 소설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가 노벨상을 받았을 때도 그의 책이 선풍적으로 팔리거나 세간의 화제를 불러 모으지 못했다. 물론 이는 국내에서 중남미 문학의 인기의 하락이라는 문제를 떠나서 노벨상 수상작이 언제나 베스트셀러가 되던 국내의 문단의 흐름이 바뀐 것이다. 한국인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면 모를까 이제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반드시 베스트셀러가 되던 시대는 지났다.

  하여튼 1980, 90년대 국내 문단의 분위기는 중남미 문학을 모르면 뭔가 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사람인 듯 생각되었고, 옥타비오 파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와 같은 작가의 이름은 지식인이면 당연히 알아야 할 상식 정도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이제 젊은 대학생들에게 이들의 이름을 물으면 이들에 대해 아는 이들이 많지 않다. 보르헤스의 시처럼 세월 따라 마술적 사실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물결 하에 이름을 날렸던 중남미 작가들이 이제는 잊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히지 않는 작가를 꼽으라면 역시 보르헤스가 중남미 작가로는 첫 손가락으로 꼽힐 것이다. 물론 파울로 코엘류가 있지만 그는 앞에서 언급한 작가들보다는 젊은 세대의 작가이기 때문에 잊혀 가는 과거의 작가라고는 볼 수 없다. 즉 잊혀 가는 중남미 작가 중에 보르헤스가 가장 안 잊히는 작가라는 얘기다. 물론, 국내 서점가에서 마르께스, 바르가스 요사 등의 작품이 스테디셀러로써 꾸준히 팔리고 있다. 그러나 나름대로 교양 있는 독자들의 지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학자들과 문화평론가들이 빼놓지 않고 인용하는 중남미 작가가 있다면 그는 여전히 보르헤스 인 것이다. 1980년대, 90년대에 인기를 끌었던 중남미 작가들에 비해 여전히 국내 중남미 학계에서 그에 대한 연구가 쏟아지고 있고 문화 평론가이자 언론인 진 중권을 비롯한 많은 타 분야의 학자들이 그에 대해 여전히 거론하고 있다.

  보르헤스가 이들에게 잊히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의 시어에 매력을 느끼기도 하고 그의 놀라운 스토리텔링 능력에 감탄을 해서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공부 좀 했다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2014년 현 시점에도 그를 거론하는 것은 그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작가이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교양 있고 학식 있다고 하는 독자들도 그의 소설 앞에서는 낭패를 보기 마련이다. 보르헤스가 처음 사용하여 한 때는 클리셰(cliche)가 되어 버린 그의 멋들어진 금언 “ 영광은 최악의 몰이해”라는 표현은 일반 독자가 보르헤스를 접할 때 느끼는 감정이다. 보르헤스가 유명하다고 해서 한번 읽어 봤는데 아무 것도 이해가 가지 않고, 그 감정은 마치 트라우마처럼 불쾌감으로 남으면서도 남들이 유명하다고 하니 경외감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를 조금 이해한 사람은 그의 정교한 사고에 경탄하고 그를 많이 이해한 사람은 그 사고의 깊고 기발함으로 그를 영원히 잊지 못한다.

  보르헤스는 수필 “클래식 작가에 관해서(Sobre los clásicos)”에서 어떤 작품이 진정한 클래식인가를 논한 적이 있다. 그에 따르면 오랫동안 대중에게 잊히지 않은 작품이 클래식이다. 그의 논리대로 보자면 보르헤스는 그렇게 대중적이지도 않고 따지고 보면 그가 국내에서 알려진 기간은 기껏해야 50년을 넘지 못함으로 아직 클래식 작가의 법주에 넣기가 망설여진다. 세계적으로 클래식 작가들이라고 할 수 있는 괴테, 세르반테스, 카프카, 까뮈, 등에 비하면 대중의 인지도나 또는 대중에게 노출된 기간이 터무니없이 적다. 그리고 보르헤스 자신이 인정하는 것처럼 그는 셰익스피어의 햄릿,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 산초, 괴테의 파우스트처럼, - 아니면, 우리 국내 소설로 친다면, 허균의 홍길동처럼 - 남다른 등장인물, 즉 캐릭터를 만들어 내지 못하였다. 그렇다고 그가 톨스토이나 호머, 도스토예프스키처럼 휴머니즘에 빛나는 감동의 대 서사시나 대하소설을 쓴 것도 아니다. 오히려 한때는 차갑고 비인간적인 두뇌 플레이만 보여주는 작가라고 비난받기만 하였다.

  또, 그의 삶이 바이런이나 헤밍웨이처럼 드라마틱하지도 않았고 자신의 사상을 현실에서 실천해내는 작가도 아니었다. 오히려 이들 작가들하고는 반대로 그의 전기를 살펴보면 그는 비겁하고 실천력이 없었으며, 소심하게 도서관에서 책이나 파고든 책벌레에 불과했다. 젊어서는 너무 소심해서 자신의 글을 남들 앞에서 읽을 용기도 없었고, 첫 여자와의 섹스에서 실패했고, 결혼생활도 실패했으며, 책이나 밤낮으로 읽다가 - 물론 유전적 요인도 있었지만 - 노년에는 장님이 되었다.

  보르헤스는 우리가 클래식 작가, 또는 종종 대문호라고 부르는 세계적인 작가들하고는 많은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필자는 이제 보르헤스를 클래식 작가의 반열에 놓고자 한다. 그것은 단지 민음사나 서울대에서 그를 고전 百選에 넣어서가 아니다. 그가 중남미 문학, 그리고 한국문학, 세계 문학에 미친 영향을 객관적으로 살피기 위해서는 그를 한 때 스타덤에 올려놓았던 포스트모더니즘 예찬론이 국내에서 완전히 사라진 2004년 지금 이 시기가 오히려 그를 대문호의 반열에 올려놓는 적합한 시기일 수 있다. 이제 보르헤스에 열광하여 그의 작품을 황금 장식에 비단 호화장정으로 제본하여 그에게 갖다 바칠 그런 광팬은 없다. 그러나 오히려 그러한 광팬들의 마음이 가라앉은 지금이 그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좋은 시기다. 즉, 그가 태어난 지 100년이 넘어서고 그가 타계한지 20여년이 된 지금 냉정히 그의 장점과 단점을 고려해 보면 그가 클래식 작가의 반열에 드는 작가인지 판단해 볼 수 있다.

  실천적 사상가도, 위대한 캐릭터의 창조자도, 눈물의 휴먼 스토리의 저자도 아닌 보르헤스, 그의 시어는 매력적이지만, 그것으로 바이런이나 키이츠와 견줄 수는 없다. 그의 스토리텔러로서의 재능 또한 당대 아르헨티나의 다른 저명 작가와 겨뤄서 손색이 없으나 그렇다고 그의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이 단테나 투르게네프, 카프카를 능가할 정도라고 할 수도 없다.

 

  그가 세계의 클래식 작가와 겨뤄도 손색이 없는 것은 그의 형이상학적 사고의 기발함이다. 그것은 일찍이 호머도, 단테도, 프루스트도 해보지 못한 시도이다. 有史이래 어떤 작가도 문학적 언어로 사고의 극단까지 가서 그 한계를 본 작가는 드물다. 물론 그의 형이상학적 사고의 기발함이 칸트나, 하이데거, 니체를 능가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형이상학적 기발한 사고를 문학적으로 표현한 작가로는 有史이래 유일무이한 작가로서 그를 클래식 작가의 반열에, 즉 두고두고 읽힐 작가의 반열에 올리며 감히 이글을 빌어 그를 아르헨티나의 대문호라 명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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